이난영 수필가

이난영 수필가

[동양일보]유년 시절 맏이는 백마 탄 왕자인 줄 알았다. 결혼하면서 가난한 집 맏이는 멍에임을 알았으나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 했다. 혹한 속에서 꽃을 피우려면 꽃대가 따스해져야 꽃눈이 나온다. 형제들의 따뜻한 둥지가 되고자 했다. 내가 노력한 만큼 집안 어른들과 이웃들의 칭찬이 이어졌고, 어머니의 주름살도 펴졌다.

몸이 투덜대도 가쁜 들숨으로 집안을 일으켜 세우려는 책임을 마셨고, 날숨으로 사랑을 내뿜었다. 어머니의 사랑에 우리 내외의 정성이 더해져 형제들은 모두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 오순도순 사는 것이 고마워 어머니의 오랜 투병 생활도 혼자 감당했다. 힘듦을 행복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하면서.

해가 거듭될수록 몸과 마음이 따로 논다. 오랫동안 팔꿈치 치료를 받았는데도 물건만 들면 몽니를 부린다. 며칠 전에도 주전자 가득 물을 끓여 보온병으로 옮기다가 놓치고 말았다. 펄펄 끓는 물은 제 세상을 만난 듯 허벅지와 종아리로 춤을 추고 다녔다.

다행히 2주 후 양쪽 다리에 칭칭 감았던 붕대를 풀게 되었다. 내 딴에는 기뻐 가족 카톡방에 올렸다. 아들, 딸, 며늘아기는 고생했다며 상처가 아물 때까지 조심하라고 댓글을 다는데 옆지기는 일언반구 말이 없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데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하면 좋으련만 꿀 먹은 벙어리다. 저녁을 먹으며 “나한테 할 말 없어요?” 하니, “뭔 말” 한다.

이 집에서 나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표정이다. 할머님과 어머님 10년 동안 혼자 병간호하다가 허리 다친 것부터 맏이의 고단함을 털어놓았다. 45년 동안 봉제사 받들며 형제간의 우애를 지키려고 노력한 아내를 위해 꽃다발은 바치지 못해도 입 서비스도 못하냐고, 서운함을 토로했다. 묵묵부답이더니 겨우 한다는 말이 “맏이에게 시집왔으면 당연한 것 아냐?” 한다.

당연한 것으로 알고 살아왔지만, 서운했다. 할머니, 어머니 오랫동안 병석에 계실 때도 수수방관 오불관언하더니. 누름돌로 나 자신을 누르며 사랑으로 보듬은 결과는 ‘고맙다’가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니. 기분이 묘했다.

어머니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했다고 하지만, 요양병원이 없을 때 10년 동안 혼자 병간호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 요령을 몰라 힘으로 하려다 허리를 다쳤고, 후유증으로 대퇴부 골절까지 되었다. 그 후 걸음걸이가 완전치 않으니 소소하게 다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래도 지금껏 봉제사 받들며 형제간 우애를 지켜왔다. 칭찬에 인색한 전형적인 한국 남자란 건 알았지만, 여들없어 보인다.

구화지문(口禍之門), 화는 입으로부터 생기므로 부부지간이라도 말을 삼가야 한다. 옥생각에 나도 모르게 불평불만을 쏟아냈다. 효부상 상패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지하에 계신 어머니도 보고 계시는 것 같다.

‘혀는 몸을 베는 칼’이라는 설참신도(舌斬身刀)가 떠올랐다. 더했다가는 극한 상황까지 갈 것 같다. ‘참을 인’자를 되새기며 마음을 다스렸다. 옆지기의 구겨졌던 얼굴도 안정을 찾았다. 잠시 냉기가 감돌던 집안에 다시 웃음꽃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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