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시인

나기황 시인

[동양일보]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지난 12일 우주 과학에 관한 대단한 발표가 있었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에 131억 광년 떨어진 초기 은하가 최초로 관측됐고 천체이미지가 선명하게 담긴 영상을 발표했다. 지구에서 46억 광년 떨어진 은하단 SMACS 0723을 중심으로 138억 년 우주 역사 속에 등장한 첫 별의 탄생 비밀이 밝혀질 수도 있다는 흥분이 뉴스 곳곳에서 느껴졌다.

그럴만하다. 수많은 별의 무리가 모여 강줄기처럼 보이는 것이 은하(銀河-Galaxy)다. 그 은하계에 속해 있는 작은 별 무리가 태양계이고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행성 중 하나가 지구별이다. 현재 우주에는 약 1000억 개의 은하가 관측되고 있으며, 각 은하계에 또 1000억 개 이상의 태양 같은 별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니, 적어도 1000억×1000억 개에 해당하는 지구별이 있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131억 광년(光年)의 거리란 또 얼마나 먼 거리인가. 빛은 1초에 30만Km를 간다고 한다. 지구 둘레의 7바퀴 반에 해당하는 거리다. 그 빛의 속도로 1년을 가는 거리가 ‘1광년’, 131억 년을 간다면 상상만으로도 숨이 가빠지는 거리다. 131억 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우주의 발생지 근처까지 인간이 발명한 우주망원경으로 엿봤다는 것이니 실로 어마어마한 성과를 거둔 셈이다.

광대무변한 우주의 비밀을 밝혀내는 인간의 노력도 대단하지만, 여전히 우주의 세계, 즉 별의 세계는 신비에 싸인 그야말로 별천지의 세계다.

마침, 지난주, 우주 과학 속에 갇힌 별이 아닌 생생한 진짜 별을 볼 기회가 있었다.

몽골’의 여름 밤하늘에서였다. 3시간 반의 비행, 게르에서의 3박 끝에 바람과 별, 끝없는 초원의 나라 ‘몽골’의 별 밤 투어에 참가할 수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 야생화의 정원, 그 위로 한없이 높고 깊은 남청색의 하늘과 뭉게구름,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초원을 달리는 승마 등 모든 게 만족스러웠지만, 별 밤이 소환한 어린 시절의 추억이 으뜸이었다. 테를지 국립공원 바양하드 게르 캠프장은 평소에는 레스토랑으로 운영하고 있으나 해마다 별을 관측하기 좋은 여름 성수기에는 약 2주 동안 각국의 아마추어 천체연구가들이 모여 이곳에서 학술회의도 열고 별자리를 관측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밤이 이슥해지자 까만 하늘에 반짝반짝 별들의 향연이 시작됐다.

운이 좋았다는 관계자의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일곱 형제가 아장아장 걸어오듯 눈에 익숙한 북두칠성이 자리를 잡자, 유난히 빛나는 엄마별 북극성이 보이고 다섯 걸음 아래쪽으로는 ‘카시오페이아’자리가 있다.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을 꼬리로 치켜든 큰곰자리부터, 작은곰자리, 삼태성, 거문고자리 등 웬만한 여름밤의 별자리는 모두 찾아볼 수 있었다. 뿌옇게 흐르는 은하銀河를 사이에 두고 견우성과 직녀성은 여전히 애타는 사랑의 빛을 밝히고 있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검푸른 밤하늘은 그저 별들의 정원이며, 별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캔버스다. 붓끝으로 콕콕 찍는 곳마다 보석처럼 별빛이 살아나는 축제의 밤이자 ‘한여름 밤의 꿈’이었다. 이번 몽골여행의 최종 목적을 달성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별자리는 신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지만, 별에 관한 이야기는 각자의 추억이다. 마당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멍석을 깔고 누워서, 밤 이슥도록 별빛 속에서 얘기를 나누던 그리움의 기억들이 별자리로 몰려든다. 몇 년 전, 아프리카의 동쪽, 순례의 땅 시나이산에 오를 때도 별이 쏟아지듯 황홀했던 별 밤의 경험이 있다. 성장한 후로 그런 기억이 별로 없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의 일부다.

별은 이야기고 희망이고 꿈이다. 사람이 죽으면 마음속 별이 된다. 돌아보면 삶의 어려운 순간마다 별이 있었다. 별을 보고 자라지 못한 세대들에게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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