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 강동대 교수

이동희 강동대 교수

[동양일보]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BC 384~BC 322)가 말하였다. 서로 관계성을 맺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다. 사람은 서로 함께 부딪히고 이해하고 화합하며 살아야 한다. 서로 다른 사람이 함께 살다보면 배포 크게 이해할 때도 있고 밴댕이 속처럼 얍삽할 때도 있다. 이러한 것이 사람이지 않을 까 싶다. 그래도 사람은 간도 쓸개도 있다 보니 성질을 부려야 할 때 울컥하여 호통을 치기도 하고 하하하 하고 웃으며 화통 크게 이해하고 참으며 넘어갈 때도 있다. 이러한 것이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지 않나 싶다. 사람이 함께 산다는 것이 스트레스의 연속 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받아야 하는 스트레스의 상대는 돈도 집도 자동차도 핸드폰도 아닌 사람에 의한 스트레스가 제일 크다. 이럴 때 겉과 속이 다르게 태연하게 괜찮은 것처럼 그냥 넘어가야 할 때가 있다. 천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한다. 그래서 간 쓸개도 없고 넉살이 엄청 큰 대 인배처럼 남에게 보여 주는 삶을 살아야 할 때도 있다. 겉 다르고 속 다르게 살아가야 하는 인생살이로 우리의 실질적인 삶이지 않나 싶다. 이렇게 통 큰 군자처럼 사는 사람을 우리는 무엇이라고 할까요? 철면피라고 할까? 아님 좋은 말로 넉살이 좋은 사람이라고 혹평을 할까? 좋은 말인지 나쁜 말 인지는 상황을 살펴보아야 한다. 따라서 오늘은 넉살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 논해 보고자 한다.

넉살이란 무엇인가? 넉살은 부끄러운 기색이 없이 비위 좋게 구는 짓이나 성미를 의미한다. 넉살은 19세기 문헌에 나타나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넉살은 넉과 살이 결합한 것으로 추정되나 분명하지 않은 것이 학계의 의견이다. 사전적 의미로 넉살의 넉은 수량의 넷(四)을 살은 나이의 단위 또는 창문이나 연(鳶), 부채, 바퀴 따위의 뼈대가 되는 부분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파악되며 용언으로 쓰이고 부리다, 피우다 등과 함께 쓴다. 넉살머리는 넉살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며, 녀석 넉살머리 좋구나. 돈 한 푼 없이 친구 집에서 한 달 동안이나 빌붙어 살다니 "거참, 그놈 생긴 것과 다르게 넉살 하나는 좋구먼" 등과 같이 쓰인다.

더불어 넉살 좋다는 말이 있다. 이는 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연은 허릿달(연(鳶)의 허리에 붙이는 대)이 없이도 뜬다. 실제 바람이 강한 강화도에서는 연날리기 마니아들은 허릿달이 없이 연을 띄운다. 그런데 연 싸움에서 승률이 매우 좋았다. 연날리기 고수들은 대부분 5개의 연살을 사용하는데, 강화도에서 온 우승자의 연살은 4개 이었다. 아마도 연살 무게의 차이로 보다 높이 날은 듯하다. 이를 본 연날리기 고수들이 '강화연 넉살 좋다'라고 했으며 여기서 강화연이 빠지고 '넉살 좋다'만 남아 사용되고 있는 듯하다. 또한, 섬 지역의 여성들은 생활력이 강하다. 이런 것에 연유한 말이 오늘날까지 강화지방에서 전래되고 있으며 그만 날리는 연이 계집년으로 변하였다. 거기에 우리의 옛말인 넉살이 넉살부린다와 합쳐져 강화 태생의 여자들은 넉살 좋은 것으로 놀림을 받기도 하고, 그 지역 출신만이 넉살 좋은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기도 하였다. 예전부터 강화도 여성은 외세의 침략이 있을 때마다 저항하는 힘도 있어 강화년(강화의 여인)은 강건하다는 의미로 전해지기도 한다. 강화도 여자들은 비위도 좋고 붙임성도 좋다고 한다. 여기서 넉살 좋다는 성격이 좋다로 통용되었고, 점차 모든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래서 강화년 넉살 좋다, 넉살 강화연 좋다는 말이 있으며, 이것이 추후 넉살 좋다로 사용되었다. 잘 치댄 반죽은 차지고 윤기도 있고 맛도 좋다. 반죽이 좋으면 넉살이 좋은 것처럼 쫀득하고 맛있다. 요즘 주위에서 잘 치댄 반죽의 수타식 면발이 음식점에서 매우 인기가 좋다.

이제 이순(耳順)을 지나 환갑(還甲)이라는 세월을 살아보니 세상은 순리대로 살아야 할 듯하다. 진리가 승리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며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릴 순 없지만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성깔 있고 고집 있고 센 사람이 세상을 호령하는 세상이 이제는 아니다. 진리를 추구하며 순리를 따르는 삶이 행복한 세상이며 함께 어우러진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하루를 살더라도 인간다운 삶을 살아야 하는데, 경우에 따라서 간 쓸개도 없이 넉살 좋은 사람처럼 평화로운 외면을 비추는 이타주의의 미러링(Mirroring)적 삶이 필요하기도 하다. 이제는 가끔 넉살좋은 사람처럼 많은 부분을 이해하고 양보하며 행복한 어우러진 삶아 살아보는 것이 어떠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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