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 시인

홍인숙 시인

[동양일보]남의 일인 줄만 알았다. 느닷없는 차 사고에 한여름이 소란했다. 그날도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며 아파트 주차장으로 나온 길이다. 오래된 아파트라서 지하주차장이 없는 덕분에 날마다 주차난을 피할 수가 없는 일상이다. 가로주차 해둔 차를 반듯이 돌려서 출발을 하던 참이다. 느닷없이 굉음이 솟구치며 차체가 쿠다당 탕탕, 오른쪽으로 떠밀리며 가까스로 멈춰 섰다. 사고로구나!

운전석이 열리지도 않는다. 상대방 여자가 조수석으로 나오라고 손짓을 한다. 가까스로 빠져 나오니 온몸이 어찔하다. 잠깐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심호흡을 했다. 정신을 차리자 상대방 차 주인이 다가와 “괜찮으세요?” 하더니 연이어, 운전을 어떻게 하신 거냐고 되묻는다. 어이가 없었다. 평범한 운전 중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혼자 잘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닌가보다. 느닷없는 사고에 일상이 마비된 것도 모자라 쌍방과실로 20% 내 책임을 묻는다니 기가 막혔다.

생전처음 한방병원에 입원을 했다. 그간에 강행군으로 살아온 날들이 일시에 멈춤 상태가 되었다. 분주한 일상 가운데 반강제적인 휴가를 받은 셈이다. 때마침 입원 날짜와 겹쳐서 기말고사 성적입력 기간이라 노트북을 가져와 병상업무를 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또한 지나갈 일이었다. 덕분에 아픈 목과 어깨가 쉴 틈이 없었다. 골절까지 된 건 아니지만 통증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틀째 되는 날에야 비로소 옆에 입원한 환자와 인사를 나누었다. 아가씨였다. 아침 출근길에 상대방 운전자가 역주행을 하면서 차를 들이박았다는데 하물며 음주운전이란다. 아가씨의 차는 바로 폐차됐다는데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어서 천만다행이라고, 가족이 걱정할까봐 연락도 못했다는 것이다. “이 나이에” 하며 부모님 걱정을 하는 순한 눈빛에 할 말이 잦아들었다. 물러터진 딸이 생각났다.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은 가상하지만 그래도 가족에게 연락을 해야 한다고 어른노릇을 했다.

열흘 가까이 입원해 있는 동안 성가대를 쉬게 되니 자연히 교회에도 입원 사실이 알려졌다. 병실에 면회가 안 된다는데도 극구 찾아와 잠시라도 손잡아 주는 교회식구들이 고마웠다. 마음이 풍성해지는 나날을 경험한다.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는 사실을 새록새록 깨닫는 기회였다. 우연찮은 차사고로 인해 몸은 고되었지만 사랑의 관계로 촘촘히 파고들은 따듯한 시간은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언제 식사 한 번 해요” 라는 흔한 인사말이 익숙한 일상에서, 그 언제 한 번을 지키지 못한 약속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정신적이자 물질적인 존재인 인간에게 마음의 위로와 함께하는 차 한 잔의 만남, 한 끼의 식사 나눔은 “백언이불여일행”이라고, 피부로 깨달아지는 관계의 기쁨을 일러준다.

어릴 때는 아니라는 데도 몇 번은 더 권하는 일과, 몇 번쯤은 사양하는 미덕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솔직한 표현이 중요하고, 그런 의사를 존중해야 된다고 나름 합리성을 내세운 게 그저 깍쟁이 노릇만 한 건 아닌지. 타인의 속마음을 헤아리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건 나이에 비례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문득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때는 밧줄만 던져 줄 것이 아니라 밧줄 끝을 단단히 잡고 있어야 한다고.

우연한 입원은 의례적인 매너에 비중을 두고 살아가는 건조한 일상에서 잠시 생각을 다잡는 기회가 되었다. 바쁘다는 핑계가 사실은 마음의 거리였나 보다. 더불어 함께 먹으며 삶을 나누는 것, 관계의 기쁨에 대해 깨닫는 모든 순간이 감사하다. 경험에서 길어 올리는 체험만큼 큰 스승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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