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구 수필가

이종구 수필가

[동양일보]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우리나라 4대 국경일을 외우느라 진땀을 흘린 기억이 있다. 제헌절과 개천절이 헷갈렸었다. 아마도 뜻과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해서였나보다. 그런 국경일 중에 광복절에 대한 인상이 깊다. 우선 여름 방학 기간 중에 있어 방학과제표에 국기 다는 날 8월 15일(광복절)이라고 씌어 있으며, 국기(國旗)는 달지만, 공휴일 몫을 못 해(방학이라) 서운하기도 했다는 것과 추석(음력 8월 15일)과 같은 숫자의 날이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요즘 길을 걷다 보면 푸른 가로수와 어울린 태극기의 휘날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지방자치 단체에 따라 제헌절부터 광복절까지, 6월 초부터 70일간 국기 게양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광복 77주년을 맞는 올해는 길수(吉數)인 7이 겹쳐져 의미를 더 부여하며 많은 행사가 열리고 있다.

반갑고 좋은 현상인데 조금은 마음이 쓸쓸하다. 그간 우리는 얼마나 국기를 소중하게 여겼는지? 태극기는 관공서나 게양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국경일에도 국기를 게양하지 않는 집들이 많이 눈에 띈다. 지난 현충일 이웃집의 초등학생이 “오늘이 현충일이 인데......”하며 아파트에 조기가 걸리지 않은 집이 많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어른으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70년대에는 국기 하강식이 있었다. 오후 6시 애국가가 울리면 행인들은 모두 멈추어 서서 하강되는 국기를 보면서 엄숙하게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야 했다. 하지 않고 걸어가면 경찰에 단속되기도 했다. 영화 “국제시장”에도 엄숙한 애국가 제창 장면이 나온다. 물론 그 당시 군사 정권에 의한 강압적 애국심 고취는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요즘의 세태와 더불어 비교해 보면 국기에 대한 예절과 비례하여 애국심이라는 것도 전보다는 덜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국기를 아끼고 사랑하며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바로 나라 사랑의 구체적인 행동이 아닐까?

국기를 사랑하고 애국하자는 것이 국수주의가 되자는 말은 아니다. 이 땅에 살면서 최소한의 국민적 의무를 하자는 것이다. 선진국일수록 나라를 사랑하고 국기와 국가(國歌)를 존중히 여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국기, 과연 국기는 우리에게 무엇일까? 나라이다. 국기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나라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과 같다. 국기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과연 이 땅에 살 자격이 있을까? 이 땅에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국기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국민의 기본적인 자세는 아닐는지.

광복 77주년이다. 류관순 열사의 등사판 태극기,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이봉창 의사의 피 묻은 태극기가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 본다. 지난 7월 19일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높이뛰기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우상혁 선수의 왼쪽 가슴에 태극기를 보았을 때 마음이 짠해 옴을 느꼈었다.

더위가 가시는 광복절은 말복이었다. 이 광복의 계절에 거리에 휘날리는 태극기를 보면서 형식적이고 행사적인 것이 아닌 진정 나라를 생각하는 애국의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