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영 수필가

김숙영 수필가

[동양일보]일요일 한낮이다. 아파트에서 가까운 월명산 산책길을 걷는다. 까치 한 마리가 새끼 까치 두 마리와 함께 한가로이 걷고 있다. 산책길 엘리베이터가 열리며, 극 노인 할머니가 보인다. 할머니는 휠체어를 타셨다. 딸로 보이는 두 여인이 노인을 모시고 내가 걷고 있는 쪽으로 걸어온다. 큰딸처럼 보이는 분은 내 나이와 비슷해 보인다. 고희를 넘은 듯 얼굴에 주름 꽃이 피었다. 그를 보며 삶의 시간을 천천히 들이마신다.

산책길에서 만난 노인 분께 “할머니 참 고우시네요”하며 바라보았다. 노인은 “곱다니까 좋은데요. 내 딸들이 가끔 늙은 어미를 이곳으로 데리고 와 행복하게 해주지요”하며 딸 자랑을 하신다. 할머니의 모습에서 그들의 행복한 가정이 보인다. 어르신의 밝은 얼굴에서 '즐거운 나의 집' 노래가 그려진다.

“부모 은덕은 산보다도 높고 바다보다도 깊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부모의 은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다는 뜻으로 비유해 본다. 할머니도 두 딸을 위해 온갖 고생을 다 하셨으리라는 생각이다. 숱한 고비를 넘기며 이겨낸 자랑스러운 삶이리라. 이곳에 어머니를 모시고 온 딸 두 분도 더 없는 효녀라고 불러본다. 참 보기 좋은 그림이다.

친정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를 곱씹어 본다. 부모님 생신이면 오 남매가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에 이어 '즐거운 나의 집'을 불렀다. 부모님까지 같이 부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가족 중창이 되었다. 아버지 먼저 하늘나라로 가시고, 어머님 혼자 계실 때도, 요양원에까지 가서 생신을 축하드리며, 애창곡 '즐거운 나의 집'을 불러 드렸다. 하나를 하면 둘로 보시며, 칭찬해주시던 부모님이 옆에 계시는 듯하다.

잔디밭에 놀고 있는 까치 식구들을 본다. 어미 까치가 날고, 새끼 까치들은 종종걸음으로 걷다가 날기도 한다. 어미가 자식에게 먹이를 찾고, 깍깍 소리 내며 날아다니는 방법까지 가르치는 모습이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인간들이 부모가 되어 자식을 키우는 모습과 무엇이 다르랴. 작은 공원 산책로에 찾아온 삶의 친구라고 할 터이다.

까치집을 찾아본다. 높은 나무에 보기에도 튼튼한 까치집이 특별하다. 나뭇가지, 철사 등을 물어다가 힘들게 자식과 함께 사는 집을 마련했으리라. 내 부모님도 가족의 보금자리인 집 마련으로 한 평생을 보내셨다. 맑고 높은 하늘과 흰 구름으로 어울린 까치집에서 감미로운 선율이 들리는 듯하다.

까치들도 이런 시간을 통해 잃어버린 생기와 삶의 리듬을 찾으리라. 인간이나 동물이나 누구든지 부모는 있다. ‘부모의 정은 밥이라고 하지 않는가.’ 부모는 따뜻한 먹거리로 자식을 키운다.

코로나가 변이로 무섭게 다시 찾아오며, 아침에 걷던 산책길을 따뜻한 시간에 가끔 들린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운동하는 주변 공장과 회사의 젊은이들을 본다. 그들과 같이 걷다 보면 공원의 고즈넉한 분위기에 마음이 맑고 차분해진다. 이 같은 자연이 없다면 세상이 어떨까 읊조리며 마음을 다스리기도 한다.

월명공원에서 만난 극 노인과 까치가 삶의 가르침을 준다. 선지식이 음악으로 흐른다.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집 내 집뿐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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