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호 시조시인

김선호 시조시인
김선호 시조시인

[동양일보] “얼른 못 일어나!” 방바닥을 탕탕 치는 빗자루에 노기가 실린다. 홱, 이불이 젖혀지고 억지로 뜨는 눈에 햇살이 덤빈다. “응? 시간이 벌써 이리 됐네.” 후다닥 일어나 샘가로 나서는데 술 냄새가 진동한다. 벌컥벌컥 찬물을 들이키고는 머리를 감는다. 방을 쓸고 닦고 어머니는 분주하다. 몽롱한 정신머리로 차례를 올린다.

추석 무렵은 해산날이다. 설날 지나면서부터 잉태한 모임이 곳곳에 풀어진다. 간만에 가족도 모이고 친구도 모인다. 고향은 다둥이 모임을 분만하는 산실이다. 물론 모임의 구심점은 차례였다. 각지에서 다른 삶을 사는 친구들은 저마다 차례를 지내러 모여들었고, 열나흗날은 이슥토록 회포를 풀었다. 그러다 보니 정작 경건해야 할 추석날은 늘 예를 갖추지 못했다.

청상인 어머니에게 나는 어려서부터 집안의 기둥이고 제주(祭主)였다. 추석날이면 새 옷과 새 양말을 준비하여 당신 남편의 제사만큼은 장남인 내가 모시도록 집착했다. 한문깨나 안다는 동네 어른 손을 빌려 써온 지방과 함께 제수를 차려놓고 초등학생인 내게 절을 시켰다. 멋모르고 겪다 보니 머리가 커가면서 지방도 쓰고 진설법도 제법 눈에 익어졌다. 그리한 지가 벌써 쉰 해도 넘었다.

“엄마는 아버지가 그렇게도 싫었어? 어떻게 첫 제사도 안 지내고 모셔 가요?” 큰아들한테 제사를 넘기겠다는 장모님 전화에 아내가 뿔났다. 자식들이 알아서 음식 장만하고 모여서 지내드릴 텐데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퍼붓는다.

지난해 장인어른은 이내 돌아가셨다. 평생을 동고동락하던 장모님은 시쳇말로 멘붕 상태다. 우울증세에다가 환시, 환청 같은 치매증세가 급속히 진행 중이다. 약물치료를 하고 있지만, 조금 늦출 뿐 점점 악화하여 결국엔 인지 불능 상태로 진입한다고 의사는 진단한다.

어느 부부보다도 신뢰를 바탕으로 성실하게 살아오신 분들이라 그런지 이별의 충격이 너무나 크다. 금세 하신 말씀을 다시 하고, 쓸 만큼 용돈을 드리는데도 장판이나 이불 속에 감춰두고 돈 없다며 성화를 내신다. 이런 심리적 불안 상황에서도 남편 제사만큼은 큰아들에게 다짐받고 쥐어줘야 사후가 안심된다고 생각하시는 걸까?

오십 년도 더 지났지만, 두 어머니의 남편 제사에 대한 애착은 다름없다. 죽은 다음에야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살아서 효도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더욱 그렇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차례나 제사 풍습의 속뜻을 달리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해마다 한두 번이라도 형제자매가 함께 모여 생전의 부모님 은혜를 떠올리고 우의를 다지라는 의미도 숨어 있을 법하다.

명절 때만 되면 TV에서는 종갓집의 간소한 차례상을 조명하면서 허례 일소에 핏대를 올린다. 파김치가 된 며느리들의 애환도 단골 메뉴다. 아예 특근을 신청하거나 다른 일정을 잡아놓고 발을 빼는 풍속이 이제는 일반화됐다. 굳이 어느 게 옳고 그르다는 시비를 하지는 말자. 그러나 명절만큼은 모두 즐거웠으면 좋겠다. 집안마다 사정이 다르고 가치관도 제각각일 테니 그저 가풍에 조화롭게 어울리면 족하지 않을까?

오십 년 전 어머니나 오늘날 장모님이나 모두 장남에게 의지하고 집중했다. 아마도 장남을 중심으로 형제자매가 화목하게 지내라는, 장남이 중심 잡고 아우들에게 모범 보여 돈독한 가문을 이어가라는 은유라 믿고 싶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