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보영 수필가

송보영 수필가

[동양일보]비타민 주사를 맞았다. 온몸에서 비타민 냄새가 났다. 비타민 제품을 바른 것도 아니고 단지 주사를 맞은 것뿐인데 몸에서 비타민 냄새가 나다니 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엔 이 냄새가 어디서 나는 것인가 싶어 집안을 여기저기 킁킁대며 돌아다녀 보았지만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얼굴이 근질거려 간지러운 부분을 손으로 만지려는데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는 것이었다. 하여 팔뚝에다가도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니 그곳에서도 나고, 비누로 손을 싹싹 씻은 뒤 다시 맡아보아도 여전했다. 그랬다 냄새의 원인은 바로 좀 전에 맞은 비타민 주사 때문이었다.

몽골에 갔을 때다. 초원이 너무 아름다워 기절할 뻔했고, 가까이 가서 보니 채 10센티도 안 될 정도로 바닥에 낮게 자라고 있는 것들이 그냥 잡풀이거니 했는데 대부분이 야생화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더 놀라운 사실은 야생화가 거의 허브라 감동했다. 초록의 물결에 취해 야트막한 산등성이를 오르다 보면 향기로운 냄새가 오감을 흔들어 깨우는 통에 스커트 자락을 펄럭이며 체력이 바닥나는 줄도 모르고 쏘다녔다.

그곳의 가축들은 행복하다. 드넓은 초원을 누비며 먹고 싶은 것들만 골라 식성대로 먹어도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 초원 대부분이 향기 나는 야생화밭이다 보니 방목을 하는 가축들은 꽃을 먹고 사는 셈이다. 그래서인가 가축의 마른 분비물을 태워도 역한 냄새가 나지 않았다. 흡사 꽃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봄볕이 청량한 5월 어느 날 비자림 숲에 갔다. 이제 막 피어난 여린 잎들 사이로 소쇄한 바람과 은빛 햇살이 스며들자 숲은 햇살과 바람이 이끄는 대로 초록 춤을 추기 시작했다. 숲이 느릿느릿 숨차지 않게 추는 춤사위를 따라 여린 향기가 숲을 가득 채워갔다. 그러자 숲에 든 이들 누구나 할 것 없이 아주 조용해졌다. 발걸음도 사뿐사뿐 모두 함께 춤을 추고 있었다. 다만 숲이 춤을 추면서 품어내는 아주 비릿하면서도 배토롬한 초록의 향기를 숨 쉬느라 코의 평수가 조금 넓어졌고 가슴을 활짝 열었을 뿐 많은 이들이 오가는데도 전혀 번잡하지 않았다. 그날 나는 비록 몇 시간에 불과했지만 내가 숲인지 숲이 나인지 구분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숲에 동화되고 싶었다. 내 안에서도 초록의 향기가 나길 소원했다. 생각해 보니 그 이유는 숲이 뿜어내는 여리고도 상큼한 향기 때문이었다.

향기는 정직하다. 이 당연한 사실을 두고 오래 생각했다. 사람 냄새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막연하면서도 추상적인 생각이 순간순간 나를 괴롭혔다. 말의 온도가 너무 뜨거워서 누군가에게 화상을 입힌 적은 없는지, 글의 온도가 너무 차가워서 읽는 이의 가슴에 닿지 않은 적은 얼마나 되는지, 삶의 모습이 소요스러워서 부끄러웠던 적은 얼마나 되는지. 하는 것들에 대해서다. 이런 것들은 나를 사람 냄새나게도, 멀어지게도 하는 근원 일터이다. 얼마를 더 바장여야 초록을 머금은 향기가 날는지 요원하고 요원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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