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옥 수필가

박순옥 수필가

[동양일보]‘웃을 일 있어서 웃는 것 이 아니라 웃다 보면 웃을 일이 생긴다’는  말을 나는 참  좋아한다. 그래서 나도 가끔은 남을 눈물 나도록 웃게도 한다. 그냥 지나치듯 살짝 흘린 말이 듣는 사람의 감성을 자극한 것인지, 아님 요즘 너무 웃을 일 없는 세상이라 어정쩡한 나의 아줌마개그가 이심전심 통한 것인지 난 어쩌다 웃음 전도사가 되었고, 여행이라도 할라 치면  친구들이 나를 옆자리에 앉히고 싶어 한다.

 한참을 남을 웃기는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쩌다 정작 내 영혼은 공허하고 ‘이거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고개를  갸우뚱 거릴 때가 많다.

만화를 그리는 작업을 하던 남편과 서울에서 두 아이들 데리고 평범하게 살던 내게 어느날 갑자기 쓰나미가 닥쳐왔다. 누군가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대사가 나와는 아무상관 없는 줄 알았는데,  남편이 나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지독한 가슴앓이는 시작되었다. 어린 아이들 때문에 어떻게든 가정을 지키려 3년여를 울고불고 애원도 해가며 버티다 결국은 남남이 되어 돌아온 그날, 마당 가득 떨어진 샛노란 은행잎이 처연하게도 나를 반기더니, 밤이 되자 감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달빛은 짜증나게 눈이 부셔 나를 더욱 슬프게 했다.

며칠 후 아이들을 데리고 강원도 별장에 바람 쐬어 주러 간다던  남편이 시댁으로 빼돌린 후에 나 혼자 있는 집은 너무 넓고 무서웠다.

빈 방마다 주인 잃은 물건들은 여기저기 나뒹굴고 열린 방 문짝들은 바람에 휘둘리듯 쾅 쾅 소리를 내고, 이런저런 서러움에 울다 잠들은 어느 새벽 숨이 막히는 심한 가위눌림으로 간신히 깨어나 비오듯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냈다.

아무도 없는 집이 을씨년스럽고 무서워 온 집안에 불을 다 켜고 주스 잔에 소주를 따라 맹물처럼 마셨다. 정신은 더 또렷해지고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렇게 또 한 잔을 마셨다. 

그 다음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너무 추워 한기를 느끼며 고개를 들어보니 화장실 앞에서 널브러져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런 나 자신이 너무 싫고 보는 이는 없지만 부끄러웠다. 그날 신 새벽에 망치로 한 대 얻어 맞은 듯 나는 깨달았다.‘이래서는 안되지. 순옥아! 정신 차려야지. 언젠가 만날 아이들한테 결코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어야 하지 않겠니?’

살던 집을 정리하고 나는 지방으로 내려와 좁은 가겟방에서 담요만 덮은 채 새우잠을 자며 닥치는 대로 오랜 세월 일에 몰두했다. 삶의 전환점에서 얻은 많은 깨달음으로 진중해지는 나이가 되고 보니 머리에 맴도는 인생 보따리를 하나둘씩 풀고 싶었다. 나이가 무럭무럭 자란 만큼 글을 쓰면서 마음도 함께 성장함을 느꼈다. 억지로 담을 수 없는 중년에게만 주어지는 부담이자 특별함을 글로 쓰면서 정제된 언어로 정리하니 나쁜 기억은 흔한 추억이 됐다. 중년이후 글쓰기의 가장 큰 축복은 그간 쌓은 경험을 현명하게 활용할 줄 안다는 것이다. 그렇게 몇 년 동안의 글쓰기로 나를 치유했다.

어느새 훌쩍 자라  내게로 다시 온 아이들은 오늘의 희망이자 행복이다.  자기 아빠를 닮은 둘째 아이는 다시 그림을 시작하더니 다음 달엔 만화책도 낼 예정이란다. 요즘은 하루하루가 풍선처럼 솜사탕처럼 달달한 나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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