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무성 수필가

함무성 수필가

[동양일보]밤이 되니 제법 서늘하다. 창가의 풀벌레소리가 마치 연주를 준비하는 오케스트라 현악기의 스트링 같다.

수컷들이 짝을 부르는 소리다. 여치, 땅강아지, 귀뚜라미, 방울벌레, 베짱이들이 한껏 청아한 소리를 낸다. 얼핏 불협화음 같지만 가만히 들어보면 소리의 길이와 음 높이에서 나름대로 규칙이 있다. 눈을 감고 들어도 오색의 찬란한 빛이 느껴지며 저절로 명상에 들게 된다. 어느새 가을이 문턱에 와 있다.

새벽에 일어나 마당가의 텃밭을 살폈다. 풀벌레를 잡으려고 쪼그려 앉아서 배춧잎을 들여다보았다. 섬서구메뚜기의 어미가 새끼를 등에 업고 있는 것 같다. 짝을 지은 암컷과 수컷이다. 오호라. 등에 올라탄 작은 녀석이 서방이로구나. 녀석들은 연한 배추포기에 터 잡고 앉아 밭주인이 보는 줄도 모르고 태연히 서로 꽁지를 붙이고 ‘실뜨기’를 하는 중이다.

‘실뜨기’는 어렸을 적 우리 자매들의 놀이였다. 젖 물려 아기를 재워 놓은 어머니는 우리에게 조용히 놀아야 한다며 실뜨기를 가르쳐 주었다. 동생과 나는 무릎을 맞대고 앉아 굵고 긴 실을 둥글게 매듭지어 실뜨기 놀이를 즐겨 했다. 순서대로 날틀, 쟁반, 젓가락, 베틀, 소눈깔, 절굿공이를 번갈아 만들며 실이 엉킬 때까지 소근 대며 놀았었다. 잠든 아기가 깨지 않도록 숨죽이고 집중해야하는 놀이다.

실뜨기를 좋아한 건 삼촌도 마찬가지였다. 삼촌은 군대에서 제대하자마자 얼굴이 뽀얗고 눈이 가느스름한 아가씨와 맞선을 보더니 서둘러 장가를 갔다. 새살림을 나기 전에는 우리 집 건넌방에서 함께 살았는데 문 닫고 조용히 지내는 때가 많았다.

그때 어머니는 ‘삼촌네가 방에서 조용히 실뜨기를 할 때는 함부로 문 열고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 유년의 시절에는 삼촌 내외가 우리들처럼 정말 실뜨기 놀이를 하고 있는 줄 알았다. 사춘기를 거치며 어머니가 말한 또 다른 ‘실뜨기’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곤충들의 실뜨기는 보기에 관능적이다. 등에 업혀 붙은 놈, 긴 꼬리를 말아 둥글게 모양을 만들고 둘이 붙은 채 하늘을 나는 놈. 뒤집어진 채로 데굴데굴 구르면서도 단단히 붙어 있는 놈, 나름 형이상학적인 오르가슴을 즐기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음탕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들의 한 살이 과정에서 후손을 남겨야하는 사명使命이 인간이 추구하는 쾌락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일까.

짝을 정한 고라니가 실뜨기를 시작한 듯 숲이 조용해졌을 때쯤에 남편이 슬그머니 나를 흔들어 깨운다. 숲속마을에서 자연과 친구 되어 살자고 한 남편은 신방 차린 고라니들이 부러웠나 보다. 우리도 실뜨기를 하잔다.

눈 내리는 겨울밤은 깊고 길다. 듣는 사람이 없는데도 우리도 숨죽이며 실뜨기를 했다. 쟁반, 베틀, 젓가락을 만들며…

살아있는 생명들의 실뜨기는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풀벌레 잡는 일은 그만 두어야겠다. 배춧잎이 몇 닢 결딴난들 어떠랴. 풀벌레들의 향연을 축복하며 곧 끝나게 될 그들의 마지막 생生을 기다려 주자.

아침 공기가 싸늘하다. 배추밭 고랑에서 섬서구메뚜기들이 놀라지 않게 조용히 일어선다. 미물들의 삶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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