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옥 수필가

김정옥 수필가

[동양일보]너무 마구잡이로 다뤘나. 살짝살짝 톡톡 건드리기만 하란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함부로 두드린 건 내 탓이 아니었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서 반응하면 왜 두드리겠는가.

차에 장착된 내비게이션이 말썽이었다. 아무리 터치해도 반응이 없다. 이것저것 마구 눌러보기도 하고 탁탁 두드리기도 하며 별짓을 다 해 봐도 소용이 없었다. 먹통이 된 것처럼 꿈적도 하지 않았다.

예전에 텔레비전이 수신 상태가 고르지 않아 지지직거릴 때가 있었다. 남편은 답답한 나머지 정수리 부분을 탁탁 때리곤 했다. 애먼 텔레비전은 잘못도 없이 두들겨 맞았다. 그러다가 갑작스러운 충격에 정신을 차린 것처럼 화면이 정상으로 돌아오기도 했었다. 이번에는 충격요법이 오히려 더 악화가 되었나 보다.

폐암으로 고생하시던 오빠가 위중해져 임종 면회를 하러 가려던 참이었다. 낯선 길을 찾아가야 하는데 내비게이션이 작동되지 않는다. 시간이 없어 마음은 급한데 비마저 오락가락하니 습기가 차서 백미러도 안 보인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휴대폰 내비게이션 앱을 활용하려니 설상가상으로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 곧 꺼질 것 같아 불안했다. 여기저기 굴러다니던 것도 쓰려고 찾으면 안 보이고 평소에 잘 되다가 급하면 작동이 안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금이 딱 그 꼴이다. 다행히 목적지에 도착할 동안 배터리가 버텨줘서 간신히 다녀왔다.

차내에 있으나 마나 한 것이 떡 버티고 있으니 볼썽사나웠다. 아무래도 탈이 난 듯싶어 AS센터를 찾았다. 터치가 안 된다고 하자 이것저것 만져보더니 전체를 뜯어서 수리해야 한단다. 그러더니 오래된 제품이라 부품이 없을 수도 있고 수리비가 만만치 않을 테니 새것으로 바꾸란다. 이가 아픈데 치료하려면 힘들고 결국은 뽑게 될 테니 발치를 하고 인공치아를 심으라는 것과 같았다. 생각다 못해 정비사 말을 들은 체 만 체하고 발걸음을 되돌리고 말았다.

오빠는 임종 면회하고 온 이튿날 영면하셨다. 온몸에 생명줄을 줄레줄레 매달고 가쁜 숨은 몰아쉬고 계시더니 그예 숨이 멎었다. 장기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손을 놓아 버린 것이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시고 소천하셨으니 천국에 가시지 않았을까.

병이 나면 병원도 한 군데만 가보지 말라고 한다. 내비게이션 수리하러 여기저기 수소문해 찾아갔다. 이번에 간 곳은 3차 진료 기관 격인 대학병원 차원이었다. 여러 차례 문진도 하지 않는 걸 보니 명의를 만났나 보다. 정비사가 이리저리 매만지니 죽은 듯 숨도 쉬지 않고 꼼짝을 하지 않던 기기가 기적처럼 되살아났다. 친절한 정비사가 무료로 처방을 내린다. “꾹꾹 자꾸 누르지 말고 살짝살짝 손끝으로 톡톡 치세요.” 상한 이를 발치하지 않고 다시 쓸 수 있게 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고맙습니다.’를 두 번이나 연거푸 했다.

오빠의 심각한 병도 전조 증상이 있지 않았을까. 우리 내비게이션처럼 명의를 만나 적절한 처치로 미리미리 손을 봤으면 큰 병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몸이 보내는 미미한 신호를 무심코 지나쳐 알아차리지 못했으니 애석할 따름이다.

톡톡, 살짝살짝 치면서 살살 다룰 일이 어디 내비게이션뿐일까. 얼음처럼 차갑게 닫혔던 사람 사이 관계에도 살몃살몃 마음을 주며 스스로 빗장이 풀리기를 기다려야 되겠지. 나이 든 내 몸도 과부하가 걸려 주저앉게 할 것이 아니라 슬슬 다독이며 살 일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사 마구 다룰 일은 어느 것도 없다. 숨탄것이든 아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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