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순 수필가

이효순 수필가

[동양일보]현관 입구 계단 옆 오른쪽엔 단풍나무가 많이 자랐다. 우리 집 대문 열고 들어올 때 가장 먼저 나를 반긴다.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무기둥 뒤 벽 쪽 땅에는 아직도 파란 플라스틱 화분 조각이 끼어 있다. 산단풍나무가 살던 집의 흔적이다. 22년 전 속리산 등반할 때 데려왔다. 벽 앞에서 서로 바라보다 한 몸을 이루고 다정히 자란다. 연리목이 됐다.

상주 쪽에서 속리산 문장대를 오르면 능선이 완만하다. 등산로 옆 큰 나무 아래 단풍 홀씨가 떨어져 아기 나무들이 여러 포기 주변에서 자라고 있었다. 그중에 내게 선택된 것이다. 귀가해 한 뼘 정도 되는 파란 플라스틱 화분에 함께 심어 주었다.

그해 늦은 가을날 겨울 추위에 어린 단풍나무가 견디기 힘들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현관 입구 물받이 옆 벽 앞에 자리 잡아 주었다. 나름대로 월동 준비를 해 준 셈이다. 지금 생각하니 나무에 대한 상식이 내겐 전혀 없었다. 어느 날 화분 자리를 옮겨 주려고 화분을 들었더니 화분이 들리지 않았다. 땅으로 뿌리를 내려 자리를 잡은 것 아닌가. 내 힘으로는 뽑히지 않았다. 포기했다. 내가 돌보지 못해 땅에 뿌리를 뻗어 수분을 공급받은 것 아닌가. 직장생활에 분주해 그들을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 그 후 가는 두 줄기가 제한된 공간에서 자라며 얼마나 힘겨웠을까. 견디다 못해 화분을 찢어가며 살기 위해 서로 하나가 되었다. 생각하지도 않았던 연리목이 된 것 아닌가.

나무지만 서로 한 몸이 되어 자라는 것을 본다. 의미가 새롭다. 그곳에서 떨어진 씨앗도 발아되어 시멘트 담장 아래서 독립해 자란다. 우리들의 자식들처럼 부모와 떨어져 벽돌담 아래서 큰꽃으아리와 어울리어 조화롭게 산다. 자연의 이치가 사람 사는 이치와 다를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 집 현관 입구를 아름답게 연출하는 단풍나무. 사진을 찍으면 한 폭의 풍경화가 된다. 산단풍나무를 배경으로 하얀 나무 조각으로 칸칸이 만든 현관 유리 출입문. 이국적인 느낌이 드는 집이다. 집을 산단풍나무가 훨씬 멋진 집으로 가꾸어 준다.

가을이면 산단풍은 유난히 곱게 물 든다. 꼭 집에 산단풍나무 한 포기 심고 싶었던 것이 현실로 되었다. 내가 생각한 대로 도심지에서도 어찌 그렇게 고운 빛으로 물이 드는지. 산에 온 느낌이 든다. 물든 잎을 따서 책갈피에 끼워 잎 누름을 한다. 아직도 내 마음을 지인들에게 보낸다.

나이 칠십이 넘어 이렇게 하며 지내는 것은 어찌 보면 사치는 아닌지. 그런 것들도 생각해 본다. 마음속에 피는 봄 언덕의 아지랑이를 바라본다. 우리 내외도 함께 나이 들어가며 산단풍나무처럼 서로 배려하며 묵묵한 그런 삶을 닮아가야 하지 않을까. 산단풍나무엔 지난가을 고왔던 잎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직은 초록빛이지만 가을이 깊어지면 고운 빛깔로 내게 설렘을 줄 것이다. 나무에 달린 씨앗도 영글어 간다. 겨울이 오면 고왔던 단풍잎도 마른다. 마른 잎은 생을 마감하며 땅에 떨어져 다시 단풍나무의 밑거름이 된다.

늘 나의 맘에 깊숙이 자리 잡고 나를 바라보는 산단풍나무. 두 그루가 하나 되어 다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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