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영 시인

허재영 시인

[동양일보]“우리 아빠는 육지의 술고래다”

오래 전 어느 백일장에서 학생 작품을 심사했을 때 학생이 쓴 글 한 부분을 인용한 것이다. 솔직한 이 문장은 심사자들에게 폭소를 자아내게 했을 뿐만 아니라 한 가정의 내밀한 모습까지 엿보게 하는 것 같았다. 으레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왔을 아빠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치고는 가히 최고의 문장이라 생각되었다.

술은 인간 생활에서 뗄 수 없는 음식이다. 음식의 재료가 지역 특산물과 밀접하듯 술 역시 향토성을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에 지역마다 토속주가 있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생산되는 포도주, 맥주, 사케, 위스키 등을 보면 그 지역 농작물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행으로 어디를 가든 그 지역 술을 즐겼다. 아마 그때 내 자식들도 백일장에서 글을 썼다면 그런 내용을 썼을지도 모른다. 일부러 술 마실 건수를 만들어 사람들을 모으고, 어울리면서 무심하게 술자리에 끼었던 적도 흔했다.

그런 생활이 느슨해진 것은 쉰 지나 한 살 한 살 나이 더 먹어가면서였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은 그야말로 절단(?)이었다. 그렇다고 즐기던 술을 마다할 수는 없었다. 남과 마실 수 없는 술자리는 집으로 옮겨졌다. 책을 넣어둔 시월서고(詩月書庫) 한쪽에 값싼 와인을 박스로 재워두고 수시로 병뚜껑을 땄다. 읽은 시가 감동적이어서, 먼 곳에서 손님이 와서, 누군가의 생일이어서, 어느 땐 밤하늘 별들이 너무 맑아서 한 병에 또 한 병을 보탠 적도 있다.

그런데 지난 초여름부터는 막걸리만 찾는 막걸리 애호가가 되었다. 그런 생활의 발단은 논농사였다. 다섯 마지기 안 되는 논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였다. 농사와 무관힌 일을 하다 귀향하여 농사를 짓다보니 논에는 피범벅이었다. 부끄럽기 짝이 없는 어설픈 농사였다. 다른 일로 며칠 논에 안 가면 자란 피는 벼들보다 키를 높이며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럴 때 예전 시골에서 농사짓는 어른들이 모습이 떠올랐다. 일에 지치고 함들 때 마시는 한 잔의 막걸리 말이다. 양조장에서 배달된 막걸리를 새참과 먹으며 힘든 일을 이겨냈던 농부들의 모습이 내 모습에 오버랩 되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막걸리 한 통을 사들고 왔다. 막걸리 한 잔은 정말 피로회복제이면서 갈증을 해결해 주었다. 그것이 막걸리를 찾게 된 발단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술고래’라고 할 수도 있다. 예술가는 으레 그런 것으로 생각했던 젊은 시절은 저쪽에 있다. 호기롭게 마시던 풍류는 이미 내 곁을 떠난 지 오래다. 그래도 난 술을 즐긴다. 술꾼들이 술자리에 못 끼게 할까봐 겁도 나지만 까놓고 이야기하자면 막걸리 딱 한 병을 한계로 한다. 그것도 제일 작은 막걸리 통으로 말이다.

시방 들녘으로 벼들은 금 붓질을 하고 있다. 오늘도 난 벼들을 둘러보기 위해 논으로 갈 것이다. 흘린 땀을 보충하기 위해 집에 되돌아와선 막걸리 한 병을 식탁에 올릴 것이다. 난 술고래가 될 수 없는 위인임을 확인하면서 말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