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자 수필가

박영자 수필가

[동양일보]산책길에서 내 앞에 툭 떨어지는 작은물체에 깜짝 놀라 주워보니 도토리 한 알이다. 앙증맞게 생긴 반들반들한 도토리가 깜찍하고 반갑다. 주위를 살피니 또 한 개가 떨어져 뒹군다. 손바닥에 두 알을 올려 놓으니 형제인 듯 크기도 모양도 똑 닮았다. 갈색으로 잘 익어 아람이 벌어 제물에 떨어진 것이다.

​막 시월로 접어들어 가을의 초입인데 상수리 나무는 부지런하게도 벌써 열매를 완숙시켜 누군가에게 내어주고 있는 게 아닌가. 도토리는 참나무 떡갈나무 갈참나무 같은 상수리나무 속의 열매인데 위를 올려다보니 하늘을 가릴만치 큰 참나무가 흐뭇한 표정으로 내려다 보고 있다. ​나도 모르게 나무에게 “수고했네. 고맙다.”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참나무는 잘 보이지 않지만 셀 수도 없이 많은 도토리 깍지 속에 도토리를 품고 있을 것이고, 그 열매들을 하나 하나 떨구어 내어주고 종당에는 빈 손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것이 사는 보람이며 기쁨이라고 나에게 속삭이듯 바람 한 자락 나무를 훑고 지나간다.

올여름 더위는 유난했지만 내가 더워 죽는다고 불평을 할 때 나무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땀흘려 열매를 익혔으리라. 태풍이 몰아치던 그 밤에도 잠들지 못하고 한 톨의 도토리도 내어 줄 수 없다고 품에 감싸 안고 사투를 벌였을 텐데 나는 내 안위만 생각했지 나무들의 수난까지 생각하지 못했었다.

도토리는 다람쥐 꿩 멧돼지 같은 야생동물들의 요긴한 겨울 식량이다. 야생동물의 먹이가 되기도 하지만 전에는 사람들의 구황식물이었다. 가을이면 일삼아 도토리를 줍는 사람들이 산을 누볏다. 겨울밤에 먹는 도토리묵 맛은 별미다. 지금은 먹을 것이 많은 세상이니 사람들이 주워다 먹기 보다는 동물들에게 양보 하라는 의미로 도토리를 줍지 못하게 되어 있다. 불법으로 처벌 받을 수 있다니 세상 참 많이 변했다.

‘강은 자신의 물을 마시지 않고, 나무는 자신의 열매를 먹지 않으며, 태양은 스스로를 비추지 않고, 꽃은 자신을 위해 향기를 퍼트리지 않는다.’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다시 새겨 본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라고 했다.

102세가 되신 김형석 교수님도 긴 세월 살아보니 나를 위해 산 것은 아무 것도 남는 게 없고, 남을 위해 산 것만이 보람으로 남는다고 했다.

나를 돌아본다. 남을 위해 나는 무엇을 했는가.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하여 동분서주 바쁘다며 살아온 날들이 아닌가. 한없이 부끄럽고 한심하다.

상수리나무들, 아니 모든 열매맺는 것들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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