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미영 수필가

민미영 수필가

[동양일보]암 환자로 다리 괴사로 절단되어 잘 걷지 못하는 분이 입원하셨다. 이분은 아들 두 명에 딸이 한 명이며 부인과는 오래전 사별했다. 부인과 사별하고 혼자 밥을 끓여 먹으며 살아도 자식 중에 모신다고 하는 경우는 드물다. ‘나는 늙으면 절대로 자식들하고 안 살아’라고 큰소리치는 분들이 있다. 이런 분들 보면 ‘걱정하지 마세요. 자식들이 안 살아줘요’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나이 들어 늙고 병들고 그러다 죽음을 맞이한다. 다만 지금 내가 젊고 아프지 않으니 그 일은 나와는 요원한 일이 양 살고 있다. 늘 죽음을 생각하면서 사는 건 어렵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내게도 그런 일이 온다는 걸 인지하는 건 필요하다.

건강할 때는 혼자 살고 아프면 자식들과 산다는 분들도 계신다. 건강할 때도 모시지 못했는데 아프면 모시기가 더 힘들다. 그래서 아프면 대개는 병원에 입원했다가 노인병원으로 간 후 다시 요양원으로 자리를 옮긴다. 요양원은 죽으러 가는 곳이라며 거부하는 분들도 있지만, 요즘처럼 맞벌이 부부가 많은 시대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이분은 딸과 사위 가족과 함께 살고 있으며,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셨다고 한다. 걷는 것만 조금 되어도 다시 주간보호센터 다니시면 된다고 딸은 아버지를 재활병원으로 모셔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아버지는 당신을 모시기 싫어서 병원에 입원시켰다며 재활치료를 거부했다. 치료받기를 권하면 짜증을 내고 화를 냈다. 고집도 세고 귀가 어두워 일상적인 대화가 안 되어 설득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으며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욕구가 커서 결국은 퇴원하기로 했다.

따님이 아버님 걱정 많이 하고, 치료 잘 받아서 나오셨으면 했는데 그냥 가셔서 딸이 속상하겠다고 하자 “걱정을 그렇게 하는 년이 나를 병원에 처넣어” 하며 노여워하신다. 평소에는 대답하는 것도 귀찮아하고, 눈 맞춤도 회피하던 분인데 내일 퇴원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좀 나아져서인지 잘 알아들으시고 대답도 잘하신다.

이런 분들을 보면 마음이 답답하다. 나이가 들면 시야도 좁아지고 생각도 좁아져 내 위주로 생각하게 되어, 자녀들의 형편은 고려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화내고 고집 피우면 어떻게 감당하나 싶다. 이럴 때 함께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면 역효과다. ‘연세가 있어서 저러겠지. 아프니까 그럴 수도 있지’라며 하시는 말씀 다 들어준 뒤 설명하면 의외로 쉽게 누그러진다.

아무것도 모르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며 화를 내지 말고, 어르신이 처한 상황을 조금만 이해하고 들어주면 좀 덜 힘들다. 또한 한 번에 생각이 수정되지 않기 때문에 다음에 또 같은 질문을 해도 느긋한 마음으로 다시 부드럽게 설명해주어야 한다.

아무리 자식이 잘해도 부모 맘에 차지 않아 “내게 해준 게 뭐가 있어?”라고 하면 불효자가 되는 것이고, 조금 못해도 “그만하면 잘하지. 참 잘해”라고 말하면 효자가 된다. 부모가 억지를 부려도 잘 들어주는 자녀의 지혜와 마음에 좀 들지 않아도 잘한다고 칭찬해주는 부모의 맘이 통해야 좋은 관계 속에서 효자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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