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영 수필가

김숙영 수필가

[동양일보]바람이 달다. 상쾌한 기분으로 산책하며 꽃집 앞을 지난다. 꽃집에 넓은 창으로 보이는 만냥금의 빨간 열매에 마음이 꽂힌다. 꽃을 바라보며, 고초만상(苦楚萬狀)으로 가라앉은 사념(思念)을 내려놓는다.

꽃들은 저마다 자기 나름의 빛깔과 향기를 지닌다. 사람 또한 개성 있는 자기 얼굴을 지니고 살아간다. 꽃과 여성을 아름다움으로 새겨 본다. 이십 대 여성은 시나브로 꽃봉오리가 피어오른 꽃송이라고 표현해 본다. 삼십 대 여성은 꽃 시절에 이르기까지 상쾌함이 산뜻하게 보인다. 사십 대 여성은 원숙기의 절정으로 지천명 오십 대를 바라본다. 여성의 매력은 자신이 감추고 있는 지성과 교양의 아름다운 꽃이라고 의미를 두련다.

집으로 돌아와 아파트 베란다의 꽃밭을 둘러본다. 만냥금이 오달지게 올망졸망 빨간 열매를 맺고 달려 있다. 귀한 꽃 보석인가 보다. 삼십 년이 흐른 소나무 분재를 본다. 언젠가 사주를 보는 어르신이 내 건강을 지키려면 집안에 소나무를 꼭 키우라고 일러주셨다. 혼자 고민하다가 남편에게 알렸다. 곧바로 그는 작고 가느다란 분재를 준비했다. 그날 꽃밭에 입주한 소나무가 탄탄 세월을 가며, 제법 굵어져 분재로서 손색이 없다. 풋풋하고 푸르게 수를 놓고 있다. 화단 곳곳에 서정이 넘친다. 나는 언젠가부터 남편의 법명을 따라 베란다 꽃밭을 법향이라고 이름 지어 부른다.

법향에 20년 넘게 사는 선인장이‘주인님 어디 있나요. Where Are You’하며,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해금으로 연주를 한다. 음악으로 생활하는 나의 관심을 끌어 사랑받으려는 연주였을까. 한 아름 안아줄 만큼 자란 마디선인장이다. 애칭으로 게발 선인장으로도 불린다.

이들은 아랑곳없이 꽃피는 계절이 도래하면 화사한 꽃을 피운다. 나는 언제 꽃을 피웠나 곱씹어 본다. 불혹의 나이를 지나 사십이 되어,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며 엄마로, 가정주부로 살았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을 지나, 뜻대로 행하여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고희(古稀)를 넘어섰다. 꽃들은 다른 꽃에 대해 시기, 질투 없이 신경을 쓰지 않는다. 고통까지도 감내하며 꽃을 피우고 있지 않던가.

사람이 꽃처럼 아름다운 존재가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꽃망울을 틔우기까지 힘든 것처럼 인간은 수많은 인연 속에서 울고, 웃고 살아야 한다. “아름다운 꽃, 나무, 맑은 하늘도 바라보지 못하고 오욕과 탐욕에 묻혀 산다면 어떨까. 아름다움을 모르고 사는 삶은 슬픈 일이다.”라고 법정 스님은 《스스로 행복하라》라는 수필집 서문에서 법문하신다.

꽃이 피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두운 삶이 밝아지며 마음이 치유된다고 할 터이다. 각종 야생화, 수국, 나비 난, 사랑초도 올곧게 꽃을 피우고 있다. 말 없는 가운데 피고 지는 꽃을 보며 삶의 교훈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품어본다. 또한, 그들은 빛깔과 향기로 청정한 산소를 힘껏 뿜어내며 올곧게 하루를 간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