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옥 수필가

김정옥 수필가

[동양일보]느닷없이 닥친 엄청난 사고 소식에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날 아침부터 낌새가 심상치 않았다. ‘앵~앵~’ 난데없는 경고음이 서너 차례 요란하게 울렸다. 충북 괴산에서 4.1 진도의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갑작스러운 땅의 흔들림이 대형 참사를 미리 알려주기라도 한 것일까.

3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이태원 참사는 한마디로 충격 그 자체였다.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한곳에 몰렸다. 내리막길이며 좁은 길에서 올라오는 사람과 내려가는 사람이 뒤엉켰다. 한사람이 넘어지자 도미노처럼 계속 덮친 압사 사고였다. 곳곳에서 시민들이 심폐소생술 하는 영상을 보니 아비규환이었을 참혹한 사태가 눈앞에 그려진다. 기막히고 안타까운 마음을 어찌 필설로 다 하랴.

‘핼러윈’은 10월 31일로 영미권의 전통적인 기념일이다. 가톨릭에서 성인 대축일을 11월 1일로 하는 것에서 유래한다. 그 전날인 10월 마지막 밤을 귀신이나 주술 등의 신비주의와 연관시킨 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이날은 젊은이들이 드라큘라나 프랑켄슈타인, 미라 등 대중문화를 통해 잘 알려진 괴물 의상을 차려입고 모여 파티를 한다고 한다.

이처럼 애초에 핼러윈은 우리나라와는 상관이 없는 날이었다. 외국에서 들어온 문화가 어찌 핼러윈뿐이던가. 미국 문화가 전 세계로 전파되면서 우리나라에 상륙한 지 오래된 모양이다. 특히 젊은 층에 번지기 시작해 상업주의와 결탁하면서 축제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나 보다. 나이 든 나에게는 남의 이야기였다.

이제 핼러윈은 애달픈 우리 이야기가 되었다. 우리 자식과 손주의 꽃다운 청춘을 앗아간 비통한 일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끼어 선 채로 죽은 학생이 가엽고 딱해 가슴이 먹먹한 사건이다. 서로 누르고 눌리어 구급 대원이 구조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떼죽음을 당한 아픈 사고이다.

그들은 핼러윈 날에 이태원에 갔을 뿐이었다. 그곳에 수많은 인파가 일시에 몰려 질서가 없었던 것이 문제였다. 그날 거기 왜 갔느냐고 문책할 일이 아니다. 행사의 주체가 없어 몰려든 인파를 제재하고 현장을 지휘할 사람이 부족했던 것을 탓해야 한다.

국가 애도 기간을 정해 많은 사람이 행사를 취소하고 그들을 애처로워한다.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슬퍼하고 가슴 아파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누구의 잘못이라고 강력히 항변한들 책임질 수 있는 일인가. 참척(慘慽)을 당한 부모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우리는 억울한 그들의 죽음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그들의 남기고 간 사연을 최대한 헤아려야 한다. 불의에 귀한 생명을 잃는 사고가 더 이상 이 땅에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남은 사람이 할 일이다.

합동 분향소에 무수히 꽂힌 하얀 국화꽃이 처연하다. 이제 이승에서 겪었을 고통과 짐을 내려놓고 마음이 편해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좁은 골목에서 숨이 막혀 괴로웠던 기억일랑 떨쳐버리고 훨훨 날기를 바란다. 천국의 모든 성인이 나서서 그들을 따뜻이 품어 주길 빌고 빈다.

옹벽 아래 바람결에 날아온 단풍잎이 겹겹이 쌓여 있다. 무질서 속에 질서가 내재하는 자연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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