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영 수필가

정관영 수필가

[동양일보] 청명한 가을하늘이 높고 눈이 부시다. 기쁜 마음으로 캠퍼스로 향했다. 강의실로 가려면 흡연 구역을 지나야 하는데 기쁜 마음도 잠시 그럴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 담배 냄새가 역겹고 남녀 학생들이 모여 담배 피우는 모습이 눈에 거슬리기 때문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담배를 피워야 '남자답다'라는 구태(舊態)도 한몫하고, '멋' 때문에 담배를 피우는 듯하다. 그러나 요즘 담배의 해(害)는 때론 마약보다 더 나쁘게 간주 되기도 한다.

하지만 치기 어린 행동도 젊음이라는 이름으로 용서되고, 그것이 멋이고 낭만이라고 믿었던 학창 시절, 그들을 더 어른스럽게 더 멋있어 보이게 하는데 담배보다 더 확실한 액세서리는 없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금연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자신과 타협해 담배 앞에 무릎 꿇는 것도 나요, 그런 자신에게 관용을 베푸는 것도 나 자신이다. 담배는 그냥 거기 있을 뿐이다. 스스로 찾아가 충성스러운 담배의 노예가 되었듯, 담배를 끊는 것 또한 자신의 몫이다.

담배가 우리나라에 전해 내려온 것은 약 400여 년 전인 광해군 때인 것으로 추정된다. 남쪽에서 왔다고 해서 남초(南草)라 불리다 신비한 약초가 있는 것으로 인식되어 남령초(南靈草)로도 불렸다. 또한 술처럼 사람을 취하게 한다고 하여 연주(煙酒), 차(茶)처럼 피로를 해소해 준다고 하여 연초(燃草)로, 차(茶)처럼 피로를 해소해 준다고 하여 연다(煙茶)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담배는 민간에 빠른 속도로 전파되었다. 더욱이 청소년들의 흡연은 도를 넘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듯 담배는 우리를 마냥 유혹한다.

담배를 생각하면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간절하다. 어찌나 담배를 피우시는지 감당이 되지 않았다. 아예 입에 담배를 용접한듯하다. 폐암 진단을 받으시고, 병원에 계시면서 병세가 호전되니 또 피우셨다. 금연하시라고 간곡하게 애원도 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를 찾아뵐 때는 담배를 한 보로 씩 사다 드렸으니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이처럼 담배는 저에게 부성애로 치환되기도 했지만, 상식적으로는 그야말로 암적인 존재, 백해무익한 해악의 대명사로 불문가지이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담배는 권위와 멋의 상징, 만병통치의 위엄과 영예를 지니고 있었다. 과거, 악인지 독인지 생각지도 못하던 시절, 담배의 거침없는 유혹은 시공을 초월하고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았으며, 예언가들의 담배 예찬은 가히 종교적 엑스터시를 넘어서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제 어디를 가나 금연구역과 과태료 부과라는 경고문이 길거리에 늘어서 있다. 버스정류장에도, 지하철 역사에도, ‘담배꽁초 투기 단속’이라는 현수막까지 나붙어 펄럭인다.

이제 애연가들은 반론과 소명의 기회도 없이 ‘길 위의 범죄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쯤 되면 본인은 물론 이웃을 위해, 흡연 욕구는 자존심을 걸고 담배와의 전쟁이라도 불사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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