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석 (시인, 전 제천문인협회장)

[동양일보]늦은 봄 양지바른 담장 밑에 제비꽃이 수줍게 웃던 날, 고향 집에 닭장을 짓고 병아리 10마리를 들여왔다.

처음 한 달간은 한쪽 구석에 모여 저희들끼리 몸을 부비고 서로 의지하며 햇볕이 있는 공간으로 나올 줄을 몰랐다.

갑자기 변한 주변 환경에 적응하는 기간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밖의 세상이 두렵고 모두가 경계의 대상인가 보다. 숨어서 지켜보니 인기척이 없는 저들만의 세상에서는 제법 떠들썩하게 삐악거리며 깔아준 왕겨를 두 발로 파헤치고 노는 모습이 이쁘고 귀여워 매주 갈 때마다 부모님 안부보다는 병아리의 안부가 궁금했다.

구순을 넘긴 아버지는 하루 중 가장 햇볕이 좋은 시간을 골라 닭장 앞에 자리를 펴고 앉아 병아리들의 노는 모습을 보는 것이 큰 낙이라고 했다. 아이가 없는 시골 동네에 짹짹거리는 병아리 소리가 큰 위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병아리들이 커가면서 수탉이 네 마리나 되다 보니 세력다툼이 치열했다. 그들만의 공간에서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 쪼고, 쪼이고, 도망치고, 숨고, 날마다 싸움판이 된 닭장 안은 전쟁터였다. 벼슬은 피투성이가 되고 꼬리는 다 빠지고 그 와중에 암탉 두 마리가 틈새에 끼어 죽고 말았다. 결국에는 수탉 세 마리를 각각 줄로 묶어 족쇄를 채우는 것으로 휴전이 되었다.

동물의 세계도 사람 사는 세상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알게 모르게 치러야 하는 경쟁의 옥타곤 안에서 우리는 1등이 되어야 하고, 사랑을 차지해야 하고, 승진을 먼저 해야 하고, 리더가 돼야 하고 CEO가 되어야 했다. 꼭 그 길만이 성공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병아리가 온지 7개월이 흐른 지금, 꿩알 같은 청계알을 잡숴보지도 못하고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다. 닭장 안에도 어느 정도 서열이 정해져 질서가 잡혀가고 있다. 동물들도 싸우다가 이것이 아니다 싶으면 꼬리를 내리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 하물며 10.29 참사가 터진 지 2주가 넘어가는데도 서로 남 탓이라고 발뺌만 하고 책임지려고 하는 리더가 없다. 꼬리나 자르려고 하는 그들을 옥타곤에 몰아넣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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