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경옥 충북도 안전정책과 주무관

공경옥 충북도 안전정책과 주무관

[동양일보]“엄마! 언제와”

“응! 엄마 좀 늦을 것 같은데, 채원이가 저녁 챙겨서 주원이랑 같이 먹어, 그리고, 엄마가 빨래 세탁기에 돌려놓고 왔는데, 꺼내서 건조기에 넣고, 기본 코스로, 그리고 설거지도 부탁해~!. 참 코코밥도”라며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그런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 ‘뭐지~’잠깐 동안 정적이 흘렀다.

난 조심스럽게 “채원아~ 왜 말이 없어? 하자, “엄마는 왜 맨 날 나만시켜, 왜 성차별 해”,“엄마는 아들만 좋아해”하면서 “뚝”.

딸아이 입에서 성차별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난 무언가에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만 같아 한참을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그러다 번쩍 정신이 들면서 ‘내가 언제 성차별 했다고 난리야, 그래도 내 딴엔 “여자니까 혹은 남자니까”하는 말은 절대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이래봬도 나 성평등정책관실에 근무했던 여자라고, 누구보다 성인지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여자야 왜 이래’라면서 볼멘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 슬쩍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랬다. 딸과 통화할 때면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집안일을 딸에게 부탁하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들에게는 그러지 않았다.

왜 였을까? 아마도 딸아이는 여자니까 꼼꼼하게 잘 할 거라고 생각하고, 아들은 남자가 뭘 하겠어 하는 선입견에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 그랬구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딸과 아들을 자연스럽게 차별했구나.

그랬나 ‘나때’는 이런 일들은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하게 생각했었기 때문에 누구도 이의 제기할 생각을 못했다. 사회전반의 분위기가 그랬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21세기 `90년대생들과 함께 하는 이 조직문화에서는 여자와 남자 즉 생물학적인 성을 구분지어 말한다거나, “나때”를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꼰대 혹은 왕따”의 주인공을 면치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재난안전실 여비서가 공로연수에 들어가면서 정기 인사발령 되기까지 약 2개월의 공백이 생겼다. 그동안 비서실 공백은 주로 여직원이 도맡아왔다. 아무도 왜? 라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고 우리 모두 비서업무는 여직원이 하는 일로 당연시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2개월이란 시간이 짧지 않은 시간이며 한 사람에게 도맡아 하라고 하기에는 그 직원에게 업무 부담이 과중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팀장님과 상의 끝에 남녀, 직급 구별 없이 모두 하는 것으로 하고 근무조를 편성해 공지했다. 사실 공지는 했지만 불만을 제기하지 않을까 짐짓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결과는 의외였다. 남자 직원들의 반응이 처음 해 보는 일이라며 신기해하기도 했고, 근무경력이 짧은 직원들은 실장님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아 어렵고 어색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가까워지는 계기도 되었다며 좋은 경험이었다고 이야기하는 직원도 있었다.

이번에 재난안전실은‘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처음 시도해 보면서 성평등한 조직문화를 이루는데 한 발짝 먼저 나가는 계기가 된 것 같아 나름 뿌듯했다.

난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라떼’마시고 있지만, `나때’는 내 머릿속에서 지우고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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