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동양일보]서빙고(西氷庫)는 서울의 한강 가에 있는데, 한강의 물을 얼려서 저장하는 곳으로 조선 초에 설치된 얼음 창고이다. 한강 서쪽에 있다 해서 서빙고이다.

6.25의 1.4후퇴의 마지막 행렬에 끼어 이 서빙고강을 건너기 위해서 우리 다섯 식구는 장춘단공원을 거쳐 리어카를 끌고 가는 남정네의 뒤에서 엄마가 그 리어카카를 밀고 갔다. 리어카를 끌고 밀고 갔다 했거니와 곧 끄는 사람은 40대의 구서방이었다. 이는 경란이라는 네 살 난 딸을 업은 30대 후반 남짓의 아내. 이렇게 세 식식구의 가장인데, 고향이 경상도로서 서울로 올라와 무력가게에서 날품을 팔아온 사람이다. 이도 1.4후퇴를 차일피일 미루다 우리 큰형님에게 매달렸다. “아저씨, 제 식구가 나, 내 식구, 젖먹이 딸 이렇게 셋입니다요. 우리 집이 경상도 아입니까. 거기까지 갈라는데 지가 아직 젊어서 리어카는 끌 수 있습니더. 어디까지 가시는지 가시는 데 까지만이래두 같이 가믄 안 되겄습니꺼. 의지할 데가 하나두 없어서예.” 큰 형님은 엄마보다 나이가 많다. 엄마가 서른아홉 큰형님이 마흔 하나이니까 두 살이나 더 많다. 아버지가 양자를 갔으나 후사가 없어 여섯 살 난 큰형님을 양자로 들인 것이다 그러나 이 아들도 불구여서 후사를 못 본 까닭에 우리 엄마를 다시 들였다. 그러나 큰형님이 중학교(당시는 중학교가 5년이었다) 때 유도부에서 운동을 하다가 낙법을 잘못하여 엉치를 다쳐 서울 대학병원에서 3년을 입원하는 바람에 한 쪽다리를 전다. 그래서 할 수 없어 복덕방을 하고 있으면서 우리 식구를 책임지고 있었다. 우리 식구는 엄마, 작은 형, (큰누나는 6.25때 죽음) 작은 누나, 나, 동생 해서 다섯인데, 작은 형은 19홉으로 의용군으로 끌려간 바람에 넷 해서 큰형님까지 다섯이다. “그러지 않어두 리어카 끌 사람이 없어 한 걱정이었는데 잘됐네. 그렇게 하세.” 그런데 리어카는 우리 것이 아니다. 당시 황영감 네의 집에 방 둘을 얻어 살고 있었는데 그가 피란을 가는 바람에 그 집에서 쓰던 리어카를 그 안집의 지붕에 감추어 두고 간 것을 큰형님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걸 내렸던 것이다. 그 황영감의 아들이 소설을 썼는데 그 제목이, ‘목 너머 마을의 개’ 였다. 그걸 출판해 놓고 6.25가 나 안집 마루에 그득히 쌓아놓고 있었다. 그걸 우리가 꺼내 읽고 몇 권을 꺼내어 불의 소시개로 썼는데, 그걸 쓴 사람이 피란 가기 전 가끔 그의 아버지인 황영감 댁에 들러 대문 앞에서 멍하니 먼 데를 바라보며 서 있던 기억이 난다. 그가 바로 황0원 씨였다. 당시 나는 11살이었고 동생은 두 살 아래 아홉 살이고 큰형님은 한 쪽 다리가 불구이어서 리어카를 미는 사람은 엄마와 나보다 4살 많은 작은누나였다. 그리고 경란일 업고 우리 뒤를 따라 오는 구씨의 부인이었다. 그런데 그 많은 피란민들 틈에 끼어 우리가 서빙고강에 다달으니 이미 온 사람들이 떼를 지어 웅기웅기 모여 있는 게 아닌가. 큰형님이 사연을 물었다. 그걸 들은 한 사람이, “얼음이 단단 한가 어떤가를 몰라 섣불리 앞장서는 사람이 없네요.” 그 소릴 듣고 구서방이 아무 말 없이 리어카를 놔두고 혼자서 얼음 위를 뚜벅뚜벅 건넌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 이미 날은 저물어 구씨의 모습이 안 보이더니 급기야 몸체를 들어내며 와서는 아무 말 없이 리어카를 움직이며 우리 일행에게 따러오라는 눈짓을 보내는 거였다. 날은 완전히 깜깜하여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리야까 뒤만 죽어라 하고 따라 오이소.” 그러면서 그는 담담하게 리어카를 끌고 있고 엄마와 작은 누나는 열심히 리어카를 밀고 있었다. 동생의 손을 꼭 잡고 뒤를 따라가면서 보니까 구씨와 엄마의 이마에서 땀이 비 오듯 한다. 그러면서 구씨가 우리를 들으라고 말한다. “아랠 봐서 까맣게 길이 든 데만 따라와요!”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까맣게 길이 나 있는 데는 많은 사람들이 오간 자국이었다. 근데 왜 이리 강이 넓은가. 한참을 와서 모래사장인 듯한 곳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구씨와 엄마가 모래사장에 푸욱 쓰러진다. 우리 모두는 그리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구씨와 엄마는 손을 홰홰 저으며 괜찮다는 시늉을 한다. 이렇게 해서 서빙고강 도강은 끝났다. 들으니 뒤따라오던 사람들은 얼음이 꺼져 못 왔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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