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시인

나기황 시인

[동양일보]지난 3일, 한 해 동안 ’풍향계‘와 ’동양칼럼‘난을 책임질 본지 “오피니언 필진‘이 소개됐다. 올해도 신문이 나오는 날이면 하루 두 편씩 500여 편의 칼럼이 생산될 것이다.

칼럼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한 편의 칼럼을 받아보기까지 매일매일 작가들이 고민 끝에 완성한 원고가 편집자의 손을 거쳐 제작-발송의 전 과정이 차질없이 진행돼야 가능한 일이다.

언뜻 생각하면 칼럼처럼 쉬운 장르도 없다. 일단 글이 짧은 편이다. 정해진 형식도 없고 다뤄야 할 소재가 제한된 것도 아니다. ’칼럼(column-기둥)‘ 뒤에서 맘껏 자기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고 가지고 있는 지식을 뽐낼 수도 있다. 겉으로 보기에 그렇다는 얘기다.

한 걸음만 더 들어가서 보면 첩첩산중이요, 망망대해다.

‘누구라도 칼럼을 쓸 수는 있지만, 그것이 모두 칼럼이 되지는 않는다.’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칼럼에도 격(格)과 급(級)이 있다는 얘기다. 짧은 글 임에도 고도의 형식미가 있고, 깊은 통찰과 사유가 내포돼 있으며, 따뜻한 인간미가 느껴지는 해학까지 정제된 문장 속에 숨 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명 칼럼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소감이다.

새해가 되면 과연 올해는 어떤 글로 독자를 찾아뵐 것인가, 필자의 고민이 깊어지는 지점이다. 나름대로 세워 놓은 기준은 있다.

우선 정치 얘기는 되도록 피하고 싶다. 어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올해의 사자성어 ’과이불개過而不改‘를 예를 들어 보자. ’잘못이 있어도 고치지 않는다‘라는 뜻으로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말이지만, 가장 먼저 뜨끔해야 할 정치권에서는 쓰임새가 다르다. 뜻과는 상관없이 먼저 집어 드는 사람이 임자다.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거울이 아니라 상대를 공격하는 창槍으로 쓴다. 여의도 정가를 떠도는 ’~카더라‘ 뉴스에 놀아나는 것도 볼썽사납고, 믿었던 정당, 정치인에게 뒤통수를 맞는 뒷맛도 씁쓸하다.

이태원 참사 같은 사건, 사고를 다루는 시사 칼럼도 지양하고 싶다. 슬픔을 곱씹는 과정이 필자에게는 괴로운 작업이고, 독자에게도 불편할 수 있다는 배려에서다. 마땅한 해결책이나 사회적 합의가 미진한 경우, 외려 사회적 갈등이나 증오감을 키우는 기폭제 역할을 할 우려가 있다.

칼럼에서 정치, 시사적인 얘기를 빼고 나면 사실 절반 이상 입지가 좁아지게 된다.

의학 칼럼이나 경제, 스포츠 같은 전문가칼럼도 필자에게는 해당이 없다. 내세울 만한 전문분야도 전문가적 역량도 없기 때문이다. 쉽게 쓰려고 해도 짧은 글 안에 쉽되 수준 있는 글을 쓰는 것이 어렵다. 특출한 필력을 갖추지 못한 필자로서는 이래저래 힘든 작업이다.

엊그제, 지인의 문단 등단 축하회에 참석해서 칼럼 쓰기에 적용해도 좋은 글쓰기에 대한 기본 팁을 얻어왔다. 작가의 수상작처럼 소박하지만 따뜻하고 격조 있는 행사였다.

축사와 격려사를 통해 사람이 어떤 품성을 지녀야 하고, 글이 어떤 품격을 가져야 하는지 깨닫는 시간이었다.

”감동을 주는 사람도 필요하고 감동을 할 수 있는 마음의 폭도 필요하다. 감동이 이 사회를 이끄는 선순환의 에너지 원이기에 그렇다.“

”머리로 쓰는 글은 읽기에 멋지고 유려하지만, 읽고 나서 남는 것이 없다. 가슴으로 쓴 글에서는 ’사람‘이 보이고 진심이 느껴져 승화된 감동으로 남는다.“

격려사와 심사평에서 공통으로 언급된 말이 ’감동‘이다.

진심을 담은 글이 감동을 준다는 긍정의 힘을 믿어보자.

사람과 사람, 사회와 사회를 이어주는 것이 세련된 언어가 아니라, 언어 속에 흐르는 공감의 정서다. 쉽지만 진심이 담긴 글을 쓰고 싶다. 편하게 읽어주시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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