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 화가

정명희 화가
정명희 화가

[동양일보]새해 벽두부터 무슨 ‘헤어질 결심’이냐 싶겠지만 요즘 잘 나가는 영화감독 박찬욱의 동명 영화제목이 뇌성병력이듯 내게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평생을 우유부단하게 살았던 성격을 이참에 조금이라도 고쳐 볼 기회가 아닌가 싶어서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6월부터 만 나이를 사용한다니 반갑다. 음력 섣달생인 나는 매년 달력에서 내 생일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다음해 1월이나 2월쯤에 기재돼있었기에 어려선 억울하기도 하고 해마다 생일날이 바뀌는 것에 불만이 많았다. 재미삼아 신문에 보는 오늘의 운세마저도 양력과 음력으로 나누어보게 되니 좋은 것만 취해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로인해 혹여 기회주의자처럼 성격이 변하는 건 아닌지 내심 두렵기까지 했다.

작업실 책꽂이에 관념을 버리고 무지개를 띄워 보자라 <打破爲錦江虹>라 새긴 목판을 세워놓고 내게 붙어 기생하고 있는 관념을 탈피하려 애써왔다. 평소에 작품 소재로 우리 고장의 젖줄인 금강을 그려왔기에 금강화가란 별명까지 얻었다. 때문에 명실상부한 결실을 위해 노력했건만 믿음이 부족한 탓인지 아직껏 무지개를 띄우지도 못했다. 남들이 힘들다는 마라톤 완주를 서른 번도 넘게 해내고 춘천국제마라톤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것도 이것을 실천하려는 염원이었고, 대륙의 극지를 찾는 트래킹을 계획하고 백두산을 필두로 히말라야, 킬리만자로, 엘부르즈를 거처 맥켄리와 아쿵카구와로 출발하려는 시점에서 IMF의 매서운 칼바람에 주저앉아 아직도 재출발을 못하고 있는 터다. 그래서인지 늘 2%가 부족한 화가인 것만 같아 내심 씁쓸하다.

소설문학의 대표격인 조르바가 아니라도 인간의 본질은 자유다. 최근 2~3년 전부터 ‘자유의 여정 Freedom Trail’ 시리즈로 작업을 지속하고 있는 것도, 내 작업을 주도해온 새들의 여정이야말로 본질은 자유를 찾기 위한 과정임을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이 시리즈 작업이 벌써 480번을 넘어섰다. 1년에 200여점에 달하는 작업량이다. 산다는 건 고역스러운 일이지만 인간의 영혼은 언제나 한없이 자유로운 것이다. 이같이 연륜은 사물의 핵심에 가장 빠르게 도달하게 하는 길이다. 그렇기에 살아가는 법을 깨우쳐 후진들에게 물려줄 의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종착역에 가까웠건만 나이값을 못하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때문에라도 올해엔 어떻게 하든지 모든 관념과 헤어질 결심을 하리라 마음먹는다.

다음 달 2월엔 선배인 이석구(1942~ ) 화백과 ‘원로작가 2인 전(대전광역시교육청 정명희미술관 초대)을 개최한다. 또한 3월엔 서울 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가 개관 15주년 기념으로 나를 초대해 ‘Freedom Trail 2023’전을 연다. 과거의 관념에서 벗어나 조형작업의 본태와 시대정신의 함양에 몰입해 왔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신년을 맞는 첫 선물로 이 글을 쓰면서 Present의 또 다른 뜻이 현재를 의미하기에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게 살자 마음을 되잡는다. 결국 순간의 합이 인생이 아니던가. 자유를 통한 벅찬 의지로 내일을 찾기를 갈망한다. 때문에 비정상과의 헤어질 결심을 위해 망설일 필요는 없다. 흐르는 강물을 퍼 올렸다가 다시 쏟아부은들 같은 강물이 될 수 없다는 교훈을 상기한다.

어떻게 해야 우리 그림의 정체성을 회복시키고 미래지향적인 조형미를 창출해낼 수 있을 것인가를 찾는 것이 소원이 아니었던가. 최근에 읽은 박웅현의 책 ‘여덟 단어’의 말미에 나오는 “묵묵히 자기를 존중하면서, 클래식을 궁금해 하면서, 본질을 추구하고 권위에 도전하고, 현재를 가치 있게 여기고, 깊이 봐가면서, 지혜롭게 소통하면서 각자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을 가자”를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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