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이색취미가 역사의 한 페이지로

[동양일보 김미나 기자]“건전한 취미를 갖고 열심히 사는 평범한 청주시민입니다.”

청주 시민의 기억에 관한 기록 1000여점을 전시한 시민기록관이 지난해 12월 청주기록원 1층에 문을 열었다. 전시품 중 가장 많은 기록물을 기증한 남요섭(73‧청주시 운천동‧사진)씨.

남씨가 거의 평생을 바쳐 모아온 자료 중 일부가 시민기록관의 한 부분을 크게 차지하며 시민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남씨는 자신을 평범한 시민이라 소개했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색취미를 갖고 있는 그의 수집품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동양일보는 수집품들을 모아놓는 창고로 쓰이는 30평 남짓한 우암동 한 건물의 지하 1층에 마련된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원래 ‘수집왕’으로 유명한 남씨의 작업실은 그야말로 보물 창고다.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양의 수집품들이 가득한 이 보물 창고에는 조선 중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신기한 자료들로 넘쳐난다.

이 곳에는 헌책 등 고서는 물론이고 개화기 교과서부터 삼팔선이 그려져 있는 아주 오래된 지도, 수백장의 LP, 그동안 발행됐던 각종 신문의 호외와 창간호, 옛 청주읍성도, 청주시청 본관 조감도 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 돼 있다.

이 밖에도 행사용 리본, 펜대, 우표, 홍보용 스티커, 만년필, 연필, 필통, 페이퍼 나이프, 기념메달, 전화카드, 영화 포스터 등 온갖 수집품들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괴산이 고향인 그는 괴산고를 졸업하고 1974년 4월 도안면사무소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1980년 청원군 강서면에 근무할 당시 그는 담당 부락의 이장이 새마을사업을 하면서 집을 수리하는데 그 집에서 나온 수많은 고서를 발견했다. 이장은 '고서를 버리려 하는데 쓸데가 있으면 가져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남씨는 “고서를 가져와 훑어보니 중요한 자료가 많았다”며 “이때부터 고문서를 비롯해 사진, 지도, 신문 창간호, 시집, 교과서, 향토지, 포스터, 담배갑, 성냥갑, 두루말이책 등을 모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이색취미는 40년 넘게 이어져오며 현재 역사박물관을 방불케 할 만큼 어마어마한 양의 기록물들을 보관하게 됐다.

서울 청계천, 대전 헌책방 거리 등 중요 자료가 있다고 하면 전국 어디든 달려가 모아진 각종 수집품들은 우암동 작업실과 별도의 컨테이너박스 2개를 다 채우고도 남을 정도다.

그는 “2010년 정년퇴직하기 전까지 점심과 저녁식사 시간에 시내 헌책방을 한 차례 순례한 후 검은 비닐봉지에 냄새나고 먼지 쌓인 쾌쾌 묵은 헌책을 가득 담아 자정이 넘어 귀가하는 일상을 반복했다”며 “생활의 여유가 있어 비싼 고서나 수집품들을 모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것은 수집이 아니고 투기라 생각해 수집기준을 정했는데, 이 책이 과연 100년, 200년 후에도 자료로 활용될 수 있는지를 판단해 100년 앞을 내다보고 수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점점 안목이 높아진 그는 상당한 수준의 수집품들을 모으게 됐다. 바로 그의 수집품들을 주목해야할 이유다. 그의 수집품들은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자료들이 많다.

특히 300여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지도책 ‘천하지도’(天下地圖)가 눈에 띈다. 이 지도책은 조선, 일본, 중국, 유구(오끼나와)는 물론 세계지도가 그려진 12장짜리 책이다.

또 대한제국 시절 천민에게 호적표를 만들어준 기록물, 일제강점기 청주경찰서에 발급한 종두예방접종증명서, 6.25전쟁 때 한국군의 것으로 추정되는 태극기, 2001년 청주의정소식 창간호에 그려진 이종철 화백의 의정만평 등 그야말로 온갖 역사의 현장들이 그의 수집품 속에서 다시 빛을 발한다.

공무원 생활을 했던 남씨 개인의 기록들을 수집한 기록물들도 눈여겨볼 만 하다. 첫 발령당시 명찰부터 ‘산불을 방지하자’, ‘불조심 강조기간’, ‘77. 5. 21 오후 7시 일시에 쥐를 잡자’ 등이 쓰여진 가슴에 다는 리본까지 당시 공무원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남씨는 “자동차 살 돈까지 절약해가며 귀한 기록이 있다고 하면 달려가 한평생 수집품들을 모았다”며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앞으로 이 많은 수집품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미나 기자 kmn@dynews.co.kr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