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철 소설가

강병철 소설가

[동양일보]내 고향은 서해바다 격렬비열도에서 가까운 리아스식 해안이었다. 썰물 때 개펄에서 농게나 박하지를 잡을 만큼 수심이 낮았다. 무인도와 곶으로 꾸불텅꾸불텅 둘러싸인 흐린 물결들인데 특히 장마철의 색깔은 거뭇거뭇 으스스해서 황해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랬다. 이 세상 마을에는 모두 바다가 붙어있는 줄 알던 그런 유년이 있었다. 마을마다 초가집이 있고 할아버지와 누렁소가 있고 대밭과 미루나무가 있듯이 모든 마을에 바다가 있고 파도가 출렁이는 줄 알았다. 이따금 안면도나 남면에서 통통배 타고 바다를 건너오는 풍경에 하염없이 빠지기도 했다.

초겨울 놀이판은 자치기에서 시작되었는데 겨울이 깊어가면서 팽이치기로 바뀌다가 썰매타기를 지나 연날리기로 변신했다. 그중에서 겨울 놀이의 절정은 쥐불놀이였다. 철사끈을 연결한 깡통에 못 구멍을 내어 바람을 통하게 한 다음 마른 소똥 불씨를 넣고 쉥쉥 돌리는 것이다. 불붙은 깡통을 논두렁에 올려놓을 때마다 마른 잔디가 활활 타면서 버덩마다 까만 재를 남긴다. 그 저물녘 즈음 하천을 사이로 양쪽 동네의 불꽃 깡통들이 패싸움 대치했으니 두근두근 서스펜스의 풍경이었다. 그 순박한 갯마을 아이들도 대보름 패싸움만큼은 긴장감으로 대치를 보이는 것이다.

그렇게 하천 건너 양측 진영의 조무래기끼리 욕설도 주고받고 작은 흙덩이도 던지며 낄낄대는데, 웬걸 중학생 같은 선머슴 하나가 작대기 들더니 담배 연기까지 퐁퐁 뿜는 바람에 완전히 기가 죽었다.

“정달이 성이닷.”

아닌 게 아니라 담뱃불을 고무신 밑창으로 박박 비벼 끈 그가 징검다리 건너 멧돼지처럼 돌진하면서 우리들은 사타구니에 방울소리 나도록 도망릴 수밖에 없었다. 날이 새면 연을 날리리도 못하고 쥐불도 놓지 못하던 대보름 전날 밤 사태이다.

도망친 조무래기끼리 옴팡집 사랑방으로 민화투 치러 옮길 즈음 하필 나만 뚝 떼어놓고 가는 것이다. 외톨이가 된 나는 징검다리 건너 둔치에서 모둠불 놓는 여자들 틈에 울멍울멍 끼어들었다. 동급생 계집애들이 눈을 흘기기도 했으나 다섯 살 더 먹은 현자 누나가 감싸줘서 그나마 다행인 줄 알았는데.

“얘는 나중에 장가를 두 번 갈 관상이다.”

그 바람에 울멍울멍 부푸는 찰나 열세 살 막아주었다. 동갑내기 계집애들을 밀쳐내는 현자 누나의 봉긋한 가슴을 처음 발견한 순간 나는 숨이 콱 막혔다. 이상하다. 그날 밤 천장에 딱 달라붙은 현자 누나의 얼굴이 도대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이듬해 서울 돈암동 탁구장 식모로 떠날 때까지 그 누나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알 수 없는 슬픔에 사무치곤 했다.

어느새 버들강아지에서부터 봄이 오곤 했다. 응달의 잔설과 양지의 새싹은 겨울과 봄의 맞장처럼 한동안 대치를 이루었다. 그러다가 대보름 쥐불로 까맣게 탄 자리마다 새순들이 노랗게 고개를 내밀면서 우리들은 또 하나씩 상급반으로 진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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