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응 증평문화원장·수필가

[동양일보]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면서 친한 친구가 둘 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 세 사람이 친하게 된 것은 같은 고향이면서 같은 초등학교 동기이기 때문에 더욱 친하게 된 것이다.

그 중에 한 친구는 중학교는 다르고 다른 한 친구는 사실은 초등학교는 한해 먼저 나왔는데 초등학교시절 워낙 공부를 잘해서 서울에 있는 중학교를 시험을 쳤는데 떨어져서 초등학교 재수를 하는 바람에 같이 다니다가 이듬해 다시 서울에 시험을 쳤다가 또 실패를 해서 중학교를 같이 다녔고 고등학교에서 셋이 같이 한 반이 되어서 무척 가깝고 친한 친구가 된 것이다.

그 후 한 친구는 성균관대학을 졸업하고 은행원이 되어 청주국민은행 지점장도 하고 말년에는 서울 도심지의 국민은행 지점장을 하다가 퇴임하고 서울 분당에서 잘 살고 있고 지금도 자주 연락하고 1년에 한 두번 만나며 지내고 있다. 나는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교육계에 입문하여 42년간 근무하다가 정년퇴임을 하고 지역의 사회단체 등에서 활동하다가 지금은 문화원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친구는 고등학교 졸업 후 어느 대학에 진학했는지 어디에 사는지 전혀 연락이 안됐고 누구도 그 친구의 근황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한 사실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고등학교 동기들 누구도 그 친구의 근황을 거의 60년이 다 되도록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를 그것도 전혀 엉뚱한 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지난 해 12월 서울 광화문역 부근 코리아나 호텔에서 한국문화원 창립 60주년을 기리는 60년사 발간 기념식이 있었는데 주최측에서 행사 전날 부회장 중에서 연세가 제일 높은 분이라면서 건배사를 해 달라는 것이다.

마침 60년사 발간 축하연에는 연세대 교수이셨던 103세 되신 고령의김형석 교수님께서 참석하셨는데 서예가이신 박양재씨가 김형석 교수님께 사자성어 ‘목여청풍(穆如淸風)’이라는 서예 족자 두루마리를 선물하셨다. ‘목여청풍’은 부드러움, 화목이 맑은 바람과 같다고 하여 남과 대화를 할 때나 가족이 화목하게 지내야 맑은 바람과 같이 행복하다는 뜻으로 그날 건배사가 교수님의 인자함과 교수님의 외모에서 풍기는 화목함이 ‘목여청풍’과 같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많은 축하객들에게 말씀드리고 건배사를 ‘목여’하면 ‘청풍’ 으로 화답하게 하여 “목여”“청풍”을 크게 건배사로 대신하였다. 여기저기서 멋진 건배사였다고 칭찬들이 내 귀에 들리는 것이다.

그 날의 건배사를 인연으로 ‘한문연 60주년 발간 축하연’에서는 60년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를 만날 수가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연락처를 몰라 서로가 60년 정도를 보지 못하고 지냈는데 건배사에서 “저는 충청북도문화원연합회 회장이면서 증평문화원 원장 김장응입니다”라고 소개한 것이 계기가 되어 그날 우리 행사를 동영상으로 촬영하러 온 유트브업체에서 온 그 친구가 나를 알아보고 찾은 것이다. 뒤로 잠깐 그 친구가 나를 부르기에 어떻게 나를 찾나 했더니 “혹시 종필이를 아느냐?” 고 묻기에 “고등학교 친구인 박종필을 안다”라고 대답했더니 자기가 박종필이라고 하는데 정확하게 57년 만에 만나서인지 얼굴도 전혀 다르고 한참 후에야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고 반갑게 끌어안았고 서울에 있는 은행 지점장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그동안 궁금했던 사연을 주고 받으면서 안부를 물었다. 그 친구 덕분에 건배사 한 내용이나 그날 행사 전부를 녹화한 것을 유트브를 통해 보내왔고 세상에 이런 인연도 있구나 하고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 큰 행사에서 건배사를 하게 된 것도 신기했지만 건배사에서 내 이름과 증평을 알려 그 친구가 나를 알아본 것이 너무너무 신기하여 우리 말에 오랫동안 헤어졌다가 뜻밖에 다시 만난다는 해후(邂逅)가 이럴 때 딱 어울리는 말이 아닌가 싶어 더더욱 감명이 있었고 우리는 셋이 다음 해 꽃피는 4월에 증평에서 한번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참으로 멋진 해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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