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영 시인

하재영 시인
하재영 시인

[동양일보]구멍가게 카페를 개업한 지 1년 6개월이 되었음을 상기한다.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 곳에 자리 잡다 보니 해 빠질 무렵부터 문 닫을 오후 9시까지는 드립커피만 내릴 줄 아는 내가 카페를 지키게 된다. 간간히 마을 사람들이 저녁 식사 후 찾아올 때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드문 편이다. 우두커니 창밖을 내다보면 어둠 속으로 바람과 길고양이들만 분주하게 움직일 뿐이다. 텅 빈 카페에서 서성이기도 하고, 인터넷을 검색하기도 하고, 책꽂이 책을 넘기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

1년 6개월이면 그런 생활에 익숙할 것도 같은데 때론 내 자신이 낯선 지역에 불시착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은퇴 전 꿈꿔왔던 버킷리스트 몇 가지 중 하나는 작은 카페 운영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카페는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로망이다. 국내든 국외든 여행할 때 우아하고 운치 있는 카페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며 카페 내부 장식을 눈여겨보았다.

그런 생활의 이면에는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바쁘지 않는 그런 카페를 만들어 나름의 목표를 실행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카페를 찾는 손님들이 시를 생각하는 공간이 되고, 은퇴 전 미루었던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90년 전후 문단에 등단했지만 직장 생활과 창작이라는 일을 병행하다보니 글 씀에 집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시간 여유 있을 때 ‘써야지’ 하면서 뒤로 미루고 미루었던 것을 막상 은퇴 후 실행하려고 하니 그것 또한 쉽지 않음을 느낀다. 참신한 감각도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머리 회전도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하던 일도 멍석 깔아주니 안한다는 옛말이 떠올라 스스로 웃을 때도 있다.

직장 생활이 규격화 된 닫힌 공간이라 생각했는데 은퇴 후 생활 역시 닫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언론에 내가 갔었던 여행지가 나오면 방문했을 때의 사진을 찾아보는 것도 한 일과가 되었다. 미래지향적이었던 직장 생활과 달리 과거지향적인 생활이 된 것이다. 그런 모습을 확인하면서 인간 삶은 결국 그렇게 흐르는 것이 정석 아닌가 인식하게 된다.

그런 시간 살펴본 과거 사진은 내 삶의 흔적을 아름답게 되새기는 일이었다. 닫혀 있는 시간에 머문 과거 공간을 확인하면서 그것을 노다지로 삼아야겠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런 행동 자체가 변화였다. 추억이 깃든 물건이나 기록은 나이 먹는 사람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추억이라 해도 그 가치는 개인에게 있어 우주며, 과거 속에서 빛나기에 새로운 세상으로 발을 디디는 징검다리다.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난 한 사람으로 아름다운 은퇴 후를 추구하는 방법은 과거 생활을 톺아보면서 그것을 긍정적 미래와 연결시키는 일일 것이다. 늘어진 시간이 보물처럼 흐르기에 그런 궁리를 했다고 하면 누군가는 또 한바탕 지청구를 쏟아부을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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