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60년 세월이 있다
성실함으로 살아낸 김승경 이발사 삶의 터전
“16살에 이발 기술 배워 평생 일한 곳”

[동양일보 도복희 기자]△60년 시간을 품고 있는 ‘덕성이용원’

덕성이용원(청주시 청원구 공항로 117)은 청주시가 선정한 근현대 청주 미래유산 23곳 중 한곳이다. 청주 주민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공간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사라져가는 것들 속에서 옛것을 보존한 곳은 시간과 함께 켜켜이 쌓인 그리움의 잔재를 담고 있다. 덕성이용원은 그러한 공간이다. 8평 남짓 이발소 곳곳에 자리한 옛물건은 아직도 그 쓰임새를 다 하고 있다.

 

기계식바리캉, 가위, 빗, 면도솔과 면도칼이 놓여 있다. 천장에는 말법집과 곤충표본이 매달려 있고 각종 수석이 진열돼 있어 이색적이다. 말벌집과 곤충표본은 김 대표가 휴일마다 취미 삼아 다녔던 산행길에서 수집해 장식으로 달아놓은 것이다. 휴대전화가 나오기 전 설치 됐다는 공중전화기도 눈길을 끈다. 이 전화기는 100원짜리 동전을 넣으면 아직도 사용이 가능하다. 머리를 감을 때 쓰는 물바가지는 푸른색 물조리개다. 하나같이 시간을 담은 물건들이다. 새것이 아닌 옛 물건들은 흘러간 세월만큼 낡았다. 새것만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낡음이 주는 풍경은 오히려 이색적이다.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물건과 그 물건을 담고 있는 공간은 이곳을 지나간 무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베어있다.

 

덕성이용원엔 60년의 시간이 놓여 있다. 지나간 것들을 가차없이 버리고 새것으로 채우는 세상에서 세월을 품고 있는 공간은 색다르게 미학적이다.

 

 

△“하루 6~7명 찾는 단골손님이 있으니 문을 열어야지”

오래된 물건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주인은 김승경(79·사진) 대표다. 그는 아직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건강이 예전 같지 않아 문을 닫고 싶은 날도 있지만 몇 번씩 찾아오는 오래된 단골손님 때문에 약속한 날에는 반드시 문을 연다. 대신 오전 7시에 문을 열고 오후 1시까지 한나절만 영업하는 것으로 건강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오후 3시까지 문을 열어놓았는데 이제 오후 1시까지만 문을 연다. 체력이 떨어지기도 했고 지난 2년간 많은 이들이 저세상으로 떠난 터라 손님도 많이 줄었다. 그래도 하루 6~7명의 단골손님이 찾아오니 아직 문을 닫을 수는 없다.

김 대표는 “출가한 자녀들은 이제 그만하고 쉬라고 하지만 힘닿는 날까지 문을 열어놓고 싶다”며 “그만하고 놀면 심심해서 한나절이라도 일하는데 지금은 일을 즐기면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16살부터 배운 이발 기술로 살아온 인생

덕성이용원을 지키고 있는 김 대표는 1945년 세종시 전동면에서 태어났다. 6남 1녀의 4남으로 태어난 그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16살부터 이발 기술을 배웠다. 1965년 스무 살 무렵 덕성이용원을 개업한 김기옥 씨에게 본격적으로 이용기술을 배운 뒤 1966년 6월 이용사면허증을 취득하고 이용업계에 입문했다. 1967년 군에 입대한 후 35개월간 군복무를 마치고 1970년 덕성이용원을 인수해 지금까지 이발사로 일해오고 있다.

그는 결혼해 1남 3녀를 뒀다. 가장으로 생계수단을 이어가야 하던 시절에는 새로운 이발 기술을 연마하며 정기휴일을 빼고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영업을 했다.

 

한때는 스타일을 잘 살린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머리 감기고 면도를 하는 직원이 따로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는 시절도 있었다. 덕성이용원은 60년간 김 대표에게 생활의 터전이 됐다. 가정을 이뤄 자녀들을 키워낸 작업장이기도 했다. 많은 이들을 만나고 교류하며 단골이 된 손님들의 스타일을 살리는데 사명 같은 지극 정성을 다한 장소였다.

손님이 없을 때는 오다가다 들리는 몇 명의 지인들이 있어 말벗도 되고 편안한 쉼터가 되기도 한다. 그가 아직까지 문을 열어놓는 이유다.

 

 

△잊혀지지 않는 손님들

김승경 대표는 “단골손님으로 오던 분들이 오랫동안 오시지 않아 소식을 물으면 돌아가셨다”며 “그때마다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면서 현재 이곳을 찾아오는 분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발비가 50원 하던 시절부터 찾아오던 손님은 이제 더는 이곳을 찾지 않는다. 다른 세상으로 떠났으니 올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는 “인근 현대아파트에 살다가 필리핀으로 이주한 88세의 한 단골손님이 있었다. 이발하러 덕성이용원에 꼭 가고 싶다고 해서 아들이 모시고 왔다. 외상값을 갚지 못하고 이사를 간 어떤 손님은 아내 되는 분이 이발비를 가지고 와 남편이 고인이 돼 대신 왔다고 했다. 돌아가신 분의 이발비를 받을 수 없어 한사코 거절했는데 놓고 가시더라”며 간간 기억에 남는 단골 손님들을 떠올렸다.

 

덕성이용원에는 60여년 세월 동안 정성들여 머리를 만져준 숱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하나하나 다 꺼내 놓지 않아도 생계터가 되어준 이 공간에 김승경 이발사의 반평생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때마침 40년 단골이라는 이우철씨가 이발에 면도까지 마치고 난 후 “이곳에 오면 마음이 편해 문이 닫혀 있으면 기다렸다가 다음날 다시 온다”며 “앞으로도 60년은 더하셨으면 좋겠는데 이제 연세가 있어 건강이 걱정”이라고 염려의 말을 남겼다.
 

 

△낡음은 낡은 그대로 아름다움을 간직한다.

덕성이용원은 시간을 녹여낸 장소다.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변함없이 생활을 위해 문을 열고 정성을 다해 하루를 살아낸 곳이다. 하나둘 이곳에 들렀던 사람들이 떠나고 이제 그리움의 부피가 더 커져가는 곳 덕성이용원. 80세를 바라보는 주인은 지금도 찾아오는 단골손님을 위해 약속처럼 문을 연다. 오다가다 들르는 오랜 벗 같은 지인들의 쉼터가 되어주기 위해 노구를 이끌고 덕성이용원으로 온다. 고마운 일이다. 덕성이용원이 청주의 미래유산으로 선정된 것은 지나간 시간을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극히 성실함으로 한평생을 건너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낡음은 낡은 그대로 아름다움을 간직한다.

도복희 기자 phusys2008@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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