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환 수필가

양미환 수필가

[동양일보]내가 탄 시내버스가 정류장에 멈추자 어느 아들과 엄마가 버스에 올라 내가 앉은 자리 옆에 섰다. 모자의 대화가 그대로 내 귀에 들린다.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아들이 배정받은 중학교를 엄마와 함께 미리 가보는 길이다. 버스로 중학교를 통학해야 하는 아들에게 엄마가 버스 노선을 알려 주는 예행연습 같은 행보였다. 아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느새 자라 중학생이 된다는 생각에서인지 엄마의 목소리는 자신이 중학교를 가는 듯 다소 들떴다. 몇 번, 몇 번 버스를 타야하고 정류장은 몇 개를 지나고 어느 정류장에서 내려 얼마를 걸으면 된다며 엄마의 입을 통해 쏟아지는 아들에 대한 사랑은 옆에서 듣는 나에게도 그 지극 정성이 그대로 전해졌다. 열심히 이야기를 하며 세세히 알려주느라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엄마의 몸도 흔들렸다. 그때마다 엄마를 붙잡고 손잡이를 잡으라고 챙기는 아들의 모습 또한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럽다. 이제 중학생이 되었으니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철들기 시작하는 모습이 타인인 나에게도 감동스럽다. 나보다 스무 살은 더 어려 보이는 엄마를 살뜰히 챙기는 어린 아들의 모습에 가슴이 아려온다. 자식이 없는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일상이다. 누구의 살뜰한 보살핌은 나에게 허락되지 않은 일이다. 언젠가 후배를 따라 간 사주 카페에서 내 사주는 마지막 숨이 넘어가는 순간까지 누군가 나에게 물 한잔 갖다 줄 사람이 없는 사주라고 했다. 함께 간 후배는 벤츠 사주를 타고 났고 나는 2.5t 트럭 사주를 타고나 열심히 일을 할 사주라고 했다. 내 사주에 자식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였다. 재미로 본 사주지만 돌아보면 그 의미가 맞는 삶을 살고 있다. 긴 세월 흐르고 흐른 눈물샘은 마르지도 않는다. 누구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는 생각은 또 다시 눈가를 적신다.

학창시절 엄마를 따라 간 교회에서 나보다 나이 많은 남자 선배들을 내가 오빠라고 부르면 예배가 끝나고 집으로 와 어머니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아무에게나 오빠라고 부른다는 이유가 전부였다.

어머니는 딸만 다섯을 낳았다. 남아선호 사상이 남아있던 시절인데도 아버지는 살아생전 단 한 번도 아들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돌아기시기 전 날 어머니에게 아들 하나를 낳아주지도 못했다며 처음으로 입을 열어 그 서운함을 말했다. 다음 날 아버지는 생을 다했다. 아버지의 마지막 말은 평생 참고 참았을 한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에게 아들은 허락되지 않은 것이었다.

어머니도 어쩌면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내가 부르는 오빠 소리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는 생각이 든다.

원하는 것이 다 허락된 삶은 무의미하다. 고뇌가 없는 인생은 가치가 없다. 저마다 하나씩 허락되지 않은 것들을 갖고 사는 게 인생이다. 허락되지 않을 것을 탐하는데서 문제는 야기되고 세상은 시끄러워진다. 허락된 것들만 누리기에도 생은 짧다. 나에게 허락된 것들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행복한 삶이기에 오늘도 달리고 또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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