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구 바이오톡스텍 대표/충북대 수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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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일보]한국 최초로 ‘수학계 노벨상’인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분필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수학자는 분필과 칠판을 사랑하는 최후의 사람이라는 기사를 보면서 학창 시절 분필가루 날리던 교실이 생각났다. 수업이 끝나 다음 수업이 시작될 때에도 칠판이 그대로이기에 참다못해 결국에는 칠판 지우는 일을 도맡아 했다. 숨을 멈춘 채 순식간에 칠판을 지우고 교실 문을 닫고 밖으로 튀어나가면 칠판 주위는 온통 분필먼지로 친구들은 난리가 났었다. 분필가루를 뒤짚어 써 골탕을 먹은 친구들은 부디 본인이 지울터이니 제발 지우지 말라 당부했다. 분필은 선생님들이 졸고 있는 학생을 깨우는 비장의 무기이자 정신이 번쩍들게 하는 묘약이었다. 고교시절 수학선생님이 던진 분필을 맞고 아파하자 “아프긴 뭐가 아프니~분필이 깨지지 돌머리가 깨지냐” 했던 추억이 있다. 수학선생님은 분필던지기 명수로 분필 한 개로 여러 명을 맞추는 분필수제비도 가능했다.

33년 전 대학 강단에 처음 선 이후 필자 또한 오랜 분필 애호가였다. 수의대에서 병리학 실습 시 여러 질병의 현미경적 소견을 흰색,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4가지 칼라분필로 칠판에 가득 그렸다. 실물 표본처럼 묘사하기 위해 손가락으로 번지게 하면 멋진 작품이 됐다. 수학자를 분필 애호가라 운운하지만 병리학자 역시 분필과 칠판을 사랑하고 멋지게 활용하는 전문가라 생각한다. 병리조직학적 소견을 묘사하기에는 분필보다 좋은 재료는 없기 때문이다.

교사는 늘 분필을 접하기에 자신의 직업을 백묵(분필)장수라 하여 분필은 교사의 상징이었다. 열심히 가르치는 선생일수록 손에 분필가루가 범벅이고 호흡기 질환도 많았을 것이다. 손에 묻지 않는 코팅 처리된 분필과 화이트보드에 수성칼라펜, 전자칠판에 전자팬으로 발전하면서 분필은 추억의 물건이 됐다. 이제 파워포인트 시대로 바뀌면서 들고 다니던 강의노트, 분필도 필요 없고 1년 강의내용도 USB 하나면 끝이다. 강의준비로 30~40년 동안 쌓아온 시간과 노력도 요지음 시대에는 한 달이면 해결될 일이기에 정성을 다했던 지난 시간이 아깝기도 하다.

한때 먹방 유튜버들 사이에 천연재료로 만든 식용분필이 유행처럼 번졌다. 곡물, 우유로 만든 식용분필을 입안에 넣고 씹고 가루를 날리면서 여러 맛에 비유하기도 했는데 인체의 유해성에 논쟁을 남겼다. 왜 식용 분필 이야기가 나왔을까? 분필의 성분은 탄산칼슘 또는 황산칼슘으로 인체에 무해해서 식품첨가물이나 칼슘영양제로 사용된다. 탄산칼슘은 식물생장을 위한 미네랄 공급원료나 위제산제로 사용되고 골다공증 환자, 구루병, 부갑상선 기능항진증 등 낮은 혈중칼슘치에 도움이 된다. 황산칼슘은 흔히 알고 있는 석고의 성분으로 의료용깁스, 석고보드에 쓰인다. 고순도 황산칼슘은 식품첨가물로서 두부응고제 외에도 건강보조식품과 특수영양식품에도 사용되는 칼슘의 주요 공급원이다.

최근 기후변화 대응에 활동하는 빌 게이츠는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과 공동으로 더워진 지구를 식히기 위한 연구에 착수했다. 해발 20㎞ 성층권까지 열기구를 띄워 탄산칼슘 2㎏을 살포해 몇 ㎞의 햇빛을 차단하는 그늘막이 형성되는지 분석하는 공상과학소설 같은 프로젝트이다. 언제 이 연구가 실현될지 모르지만 지구 온난화 방지, 온실가스 억제 등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분필가루가 사용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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