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아영 시인

최아영 시인

[동양일보]서양의 유명한 격언중 ‘성격이 운명’ 이라는게 있지요. 나이 들고 보니 정말 그렇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다른말로 하면 자기운명은 자기가 만들어 간다는 의미가 아닌가요. 성공하는 사람이 되는것도, 실패하는 사람이 되는것도 그 열쇠는 결국 자기가 쥐고 있는 것이지요.

‘복불복’이란 말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저의 경우는 까나리 액젓이랍니다. 오래 전 이야기이지요. 시골마을에서 작은 카페를 열어 둥지로 삼고 있던 중 카페 일을 도와주던 아우에게 하루를 온전히 맡겨야 할 일이 생겼답니다. 내가 없는 그 하루 사이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던 것이죠.

커피를 사들고 나가던 젊은 청년이 한 모금 쭉 빨아 당기다 말고 갑자기 우욱 하며 황급히 문밖으로 쫒아 나가더랍니다. 한참을 캑캑대는가 싶더니 들어와서 음료를 내밀며 마셔보라 하더랍니다. 아우는 음료를 혀끝에 대어보기도 전에 벌써 알쏭달쏭한 냄새를 먼저 맡게 되었고 이 심각한 사태의 원인을 밝혀내고서는 거의 기절할 뻔 했다더라고요. 왜 아니 그랬을까요. 구수한 커피콩 향기대신 까나리 액젓냄새가 진동했을 테니까요.

문제의 발생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듦에 있어서 대개는 얼음냉수에다 ‘에스프레소’를 배합하는 방법을 사용하지만 나는 색다른 방법을 쓰고 있었거든요. 냉수 대신 미리 착즙해서 밀봉해 둔 차가운 커피에다 에스프레소를 섞어 ‘콜드 브루’ 효과를 내어왔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게 왜 문제였냐고요? 깜박 잊고 있던 일이 있었던 게지요. 커피추출액을 담아두는 원기둥 투명 용기와 똑같은 용기에다 오래전 쓰고 남은 액젓을 담아서 보관해 두었다는 사실이지요.

이쯤 되면 듣는 나로서는 폭소를 터뜨리지 않을 수도 없었지만 이게 정녕 웃을 일이던가 말입니다. 고역을 치렀을 게 뻔했기에 연이어 물어보았지요, 그래서 손님은 어땠느냐고요.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제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지 뭡니까. 까나리 맛을 제대로 보아버린 청년이 자초지종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도리어 깔깔 웃으며 난리가 났대나 뭐 어쨌대나요. 마치 본인이 1박2일 복불복 게임에서 완패를 당한 기분이랄까 뭐랄까 그러면서 말입니다.

돌이켜보니 비슷한 실수가 또 한 번 있었지 뭡니까. 서너 분이 둥글게 앉아 차를 드시던 중 한분이 본인 앞에 놓인 음료를 가져가고 다시 만들어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왜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얼음이 동동 떠있는 유리잔을 가리키더라고요. ‘오마이갓!’ 바보같이 왜 물어보았을까요. 도야지만한 왕파리가 깜장 물에서 살겠다고, 살아보겠다고 버둥거리고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래도 운이 좋았던 걸까요 아니면 ‘할무이’라 마지못해 용서해준 걸까요, 새로 제공된 음료를 잘 드시고 가시더라고요.

성공하는 사람은 남을 배려할 줄 압니다.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가지는 인간이 되는 것 인생항로에서 이건 아주 큰 자산이지요. 우리 모두가 혼자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좋은 인간관계 없이 성공할 수는 없지요. 남을 배려해야 나도 배려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을 실감하네요.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오늘도 카페에 쪼그려 앉아 낚시꾼들처럼 세월을 건져 올리고 있답니다. 한 청년이 성큼성큼 들어오더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네요, 아마도 좋은 일이 있나 봅니다, 싱글 벙글 웃으니 말이지요.

“사장님 있잖아요, 복불복 아메리카노 끝내주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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