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증평문인협회·수필가)

[동양일보]졸업을 앞두고 모교 교정에 커다란 현수막이 걸렸다. 모교를 빛낸 자랑스러운 학생들의 이름이 씌여있었다. 한 명은 배구부 특기생으로 키도 크고 얼굴도 희고 예뻤다. 나를 포함한 한 명은 인문계 여고였다.

작은 군단위의 시골마을에서 우리는 그야말로 금의환향한거나 다름없었다. 방학을 맞아 세련된 교복을 입고 나타날 때면 모두의 시선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철대문 밑으로 베게 뭉치만한 무엇인가가 개구멍을 턱 막고 있었다.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아 가까이 가보니 거무칙칙한 보따리가 서리를 하얗게 덮어 쓰고있었다. 밤새 거기서 된 서리를 맞으며 있었던거다. 자세히 보아하니 바깥에서 안으로 밀어 넣은 것으로 보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편지 엽서 뭉치였다. 아뿔싸! 내 인생의 첫사랑. 온갖 미사여구를 총동원하여 수놓았던 연애편지가 개구멍 속으로 던져져 꽁꽁 언 채 버려져 있었던 것이다. 노력을 게을리 한 건 아니지만 운 좋게 시험에 통과하여 서울로 진학은 하게 되었지만 내 마음은 몸이 멀리간들 어떠하리. 일편단심 민들레 일거라 생각했었다.

아무런 말이 없는데다 그는 내가 소집일을 앞두고 떠나던 날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배웅을 나와 주었다. 터미널 이층은 우리가 자주 가서 음악도 듣고 빵도 먹던 음악다방이 있기야 하지만 분명히 나를 보기 위해 나와준거라 믿었었다.

그 많은 사연과 추억보따리를 내동댕이 쳐놓고 배웅은 어찌하여 나왔단 말인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왜 그걸 돌려줬는지 묻지 않았고 대답도 없었다. 그렇게 한 학기 학년이 지나고 이듬해 봄.

나는 여느 때와 같이 고향으로 가는 무궁화열차에 몸을 실었다. 오랜만에 들어선 고향집은 여전히 잘 정돈되어 있었고 달라진 거라고는 어릴 적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꽃밭이 반쯤은 텃밭으로 변해있었다. 도랑을 건너야 하는 채마밭보다 한 발짝이라도 가까운 곳에다 상추며 쑥갓, 가지를 심으셨다는 어머니의 설명이다.

그런데 그 때 눈에 들어오는 매끈한 나무 한그루. 허리춤에 닿을 듯한 아담한 키에 잔뜩 폼을 재며 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데 아닌가. 어색함과 궁금증이 밀려오던 찰라 어머니께서 “이거 가가 심은거라. 학교에 식수하고 남은거라 하면서 심어주고 갔데이. 엄동설한 이겨내고 이제 터 잡았네.” 하시는게 아닌가. 다시 살펴보니 은빛 털보숭이 고깔모자를 쓴 목련이었다. 실습 나온 길에 들렀다고 하면서 가지치기도 해 주고 갔다는 것이었다.

기나긴 겨울 끝자락 이른 봄이면 어김없이 하얀 목련은 피어난다. 전파를 타고 흐르는 “하얀 목련이 필 때면 생각나는 사람~”의 노래에 잊힐래야 잊혀질 수 없는 내 젊은 날의 연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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