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쉼의 공존, 문화재를 느끼는 공간

[동양일보 김미나 기자]고등학교 시절, 단체 관광버스를 타고 견학(현장학습)을 갔던 일이 아마 국립청주박물관 첫 방문이었을 것이다. 그 때가 1992년이었으니 국립청주박물관 개관 이후 5년이 흘렀을 즈음이다. 당시 어떤 유물을 봤던 걸까, 어떤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을까, 사실 기억은 없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설 명절 연휴에 어린 자녀들의 손을 잡고 국립청주박물관 마당에서 진행됐던 투호놀이, 제기차기 같은 민속놀이를 했던 기억은 있다.

직장을 다니고 운전을 하면서 동부우회도로를 지날 때면 사시사철 변하는 아름다운 우암산의 풍경과 어우러진 국립청주박물관을 만난다.

그 곳에서 무엇을 봤던 건지, 어떤 일을 했는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시민의 일상 속에 36년째 함께 하고 있는 국립박물관이 청주에 있다는 사실이 새삼 다행이다 싶을 때가 있을 뿐.

무엇을 보든, 어떤 경험을 쌓았든 청주시민에게 국립청주박물관은 여러모로 추억이다. 때로는 하나의 풍경일테고, 또 누군가에게는 실제 현장학습이라는 본연의 목적에 충실했던 곳일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국립청주박물관은 30년 전 함께 떠들고 웃던 당시 친구들의 웃음소리와 깔깔대며 투호를 던지던 우리 아이의 어린 시절 모습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그 추억의 현장을 이번엔 ‘일’로 만났다. 기자의 시선으로 다시 만나 본 국립청주박물관의 모습이 새롭다.

●아름다운 시작, 국립청주박물관 건립

충북도는 정종택 도지사 시절, 충북의 역사적 유물을 한 곳에 모은 국립박물관 건립을 통해 도민들의 문화적 공감대를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문화적인 큰 이슈가 없었던 충북도의 국립박물관 설립의 꿈은 허망이 될 수도 있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국립박물관 건립 조건으로 충북도가 부지 3만평을 제공하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당시 지방 재정은 열악한 시기로 부지 매입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러던 중 정 지사가 정호용 전 내무국방장관의 이종사촌이며, 김성기 전 법무장관의 사위인 곽응종(1905~1987)씨에게 부지 기증을 제안했다.

곽씨는 80년 평생 근검절약해 피와 땀으로 이룩한 재산인 부지를 공익을 위해 흔쾌히 기증했고 정 지사는 이 계획안을 1978년 박정희 대통령에게 건의해 건립 승인을 받았다.

이 뜻깊은 부지 기증으로 국립청주박물관은 시민참여 박물관이라는 의미 있는 출발을 했고, 1987년 개관했다.

국립청주박물관은 부지를 기증한 곽씨의 뜻을 기리는 기념비를 1987년 설치했으며 2001년 청주시와 충북지역개발회 등이 ‘곽응종 선생 공적비’를 박물관 정원에 세웠다.

●자연과 문화가 만나는 공간

국립청주박물관은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의 의뢰로 20세기 한국 현대 건축을 대표하는 김수근(1931~1986) 건축가가 설계했다. 김 건축가는 1965년 국립부여박물관을 설계했던 인물로 최순우 국립중앙박물관장과 인연을 맺고 있었다.

현대건축물인 국립청주박물관 건물엔 전통적 요소가 곳곳에 담겨 있다. “고전 형식의 되풀이나 모방이 전통계승이라 할 수 없다. 오히려 전통의 변혁이 올바른 전통계승”이라고 말한 설계자의 철학이 숨겨져 있다.

건축을 빛과 벽돌이 짓는 ‘시’라 여겼던 김 건축가는 국립청주박물관으로 건축도 예술임을 증명해보였다. 현대건축이 한국의 전통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박물관은 도심이 아니라 우암산 동쪽 기슭의 수려한 풍광을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산을 등지고 앞에 명암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로 건물은 주변의 공간에 포근히 파묻히도록 여러 채로 나눠져 있으며 지붕의 강렬한 선은 건물의 정체성을 뚜렷이 드러낼 만큼 개성적이다.

또 멀리서 바라보는 운치가 멋스럽기 그지 없다.

국립청주박물관은 일반 공공 건물과 달리 웅장한 대문과 높은 담장, 진입을 위한 전위공간이 없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과시나 위용보다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했기에 친밀감으로 다가선다.

박물관은 5년 8개월 동안 공사가 이뤄져 1987년 7월 20일 준공, 10월 30일 개관식을 가졌다. 개관 당시 선사실, 삼국실, 불교공예실, 기획전시실 등 총 4개 전시실이 꾸며졌다.

아쉽게도 설계자인 김 건축가는 1986년에, 부지 기증자 곽씨는 1987년에 운명을 달리해 박물관 개관을 보지 못했다.

국립청주박물관은 개관 이듬해인 1988년 한국건축가협회 수상작품에 선정됐다.

●편안한 쉼, 느끼는 박물관

국립청주박물관은 청주시 상당구 명암로 143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 소속 박물관이다. 정문안내실, 관람권 받는 곳, 전시동, 사무동, 문화사랑채, 청련관, 청명관, 휴식동산, 주차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박물관 관람은 제일 높은 곳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전시장을 지나는 동안 수시로 자연과 만나면서 어느덧 현실세계로 내려오게 되는 느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상설전시실에는 충북도에서 출토된 선사시대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2300점의 유물을 시대별로 4개의 영역으로 나눠 전시하고 있어 충북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야외에는 진천 석장리 유적에서 조사된 백제시대의 제철로와 청주 용담동 유적의 통일신라시대 무덤을 복원 전시하고 있다.

또 매년 다양한 주제의 특별전시를 비롯해 박물관 연구과정, 어린이 박물관학교, 전통문화교실 등의 문화교육 프로그램과 봄문화축제 등의 각종 문화예술 공연 등 문화행사가 마련된다.

복합문화공간으로 2004년 10월 8일 문을 연 청명관은 어린이박물관과 기획전시실, 첨단 영상시설이 갖추어진 강당 등 이용자들에게 더욱 다채로운 문화생활의 기회와 편안한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다양한 전시, 볼거리 풍성

국립청주박물관의 볼거리는 무엇보다 다양한 전시다.

상설전시실 고고실의 경우 금속 등장 이전과 이후의 삶으로 전시가 나눠져 있는데, 단양 하진리 슴베찌르개, 충주 본리 한국식 동검, 음성 망이산성 갑옷, 진천 회죽리 금귀걸이 등 충북에서 출토된 다양한 금속유물을 한 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다.

상설전시 외에도 개관 이후 약 100회에 이르는 크고 작은 특별전이 열렸다. ‘한국 고인쇄문화 특별전’을 시작으로 ‘삼국시대 마구’, ‘한국의 동경’, ‘철의 역사’ 등 자체 기획한 특별전이 매년 관람객을 만났다.

특히 지난해 6~8월 선보였던 특별전 ‘야금:위대한 지혜’는 금속문화재 특화 박물관이라는 국립청주박물관의 특성을 잘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전시는 선사시대 대표적 청동기 잔무늬 거울, 한국식 동검, 삼국시대 금관, 금귀걸이, 불교공예품 등 다양한 문화재를 선보였다.

박물관은 현재 변화중이다.

특히 문화재를 영상속으로 끌어온 무심관의 4DX영상관(4D시네마)과 디지털 대장간은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에게도 인기다.

충북에서 첫 선을 보인 4D시네마는 가상현실을 기반으로 한 1인칭 4D 체험 영상관으로 손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디지털 인터렉션 기술을 통해 실감나는 체험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디지털 대장간은 장인들의 모습과 그들이 만들어 낸 창작품을 다양한 패널과 영상을 통해 체험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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