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영 수필가

김숙영 수필가

[동양일보]아침 산책을 마치고 오는 길이다. 아파트 화단 잡초 속에 앙증스러운 꽃이 보인다. 톺아보니 작은 보라색 제비꽃이 소녀처럼 수줍음을 머금고 피어나 환하게 웃고 있다. 비가 온 뒤 햇살이 눈부시어 보라색 꽃잎도 더욱 반짝인다.

봄의 설렘으로 살포시 내 마음을 두드리는 작고 무상한 꽃이다. 쌀쌀한 꽃샘바람을 이기고 무심하게 피는 꽃이 낮은 들에도 높은 산에도 핀다. 논두렁 밭두렁 등 타박하지 않고 꽃피우며 인연을 쌓고 있다. 꽃의 향연이 삶의 찬가로 들리지 않는가.

아침 산책하러 갈 때는 어둑어둑해서 보이지 않던 꽃이다. 보라색 고운 꽃이 반갑게 인사하며 나를 부른다. 덤불 속에서 땅내음을 맡으며, 피어난 꽃이 강인해 보이며 오달지다.

이 꽃은 여성이 남성에 대한 깊은 사랑을 표현할 때 선물로 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꽃을 받은 남성은 꽃의 아래 달린 꿀주머니를 살짝 뜯어 줄기를 넣어 동그랗게 반지를 만든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선물하며 행복했으리라.

나무 위에 작은 제비들이 강남에서 날아와 봄타령을 부른다. 시나브로 봄이 왔나 보다. 아침을 여는 청소부 아저씨들, 바쁘게 걸어가는 당당한 회사원들, 팔딱팔딱 학교 늦을라 뛰어가는 학생들, 모두가 봄행진으로 거리가 활기차다. 풀잎 끝에 매달린 이슬이 화사하다. 풀 섶의 작은 꽃이 해맑게 웃으며 오늘이라는 눈부신 시간을 단장하고 있다. 꽃 한 송이가 신조어로 시니컬(cynical), 세련되고 멋지지 않은가.

작은 꽃이 제비를 닮아서 제비꽃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남쪽에서 제비가 올 때 꽃이 피기 시작하여 꽃 이름표를 달았다고 그려본다. ‘제비는 작아도 강남만 잘 간다.’라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하찮아 보여도 제 할 일은 잘 해낸다는 뜻으로 품어 보리라. 하심으로 사는 그 꽃은 흙이 있는 곳이면 조건 없이 뿌리를 뻗는다. 그리고 봄노래를 부르며 꽃을 피운다. 제 할 일을 웃으며 하는 당당함이 작은 제비와 똑 닮았다.

지난해 등산길에서 오염되지 않은 보라색 꽃을 여러 송이 따왔었다. 아침 식사 후 꽃차를 우렸다. 우린 차는 향과 맛보다는 마음으로 화사하게 봄을 마신 추억이 새롭다. 이 꽃은 간으로 통하는 경맥의 흐름을 좋게 하여 간을 건강하게 해준다고 알려진다. 또한, 노화를 늦춰주고 면역력을 증진하여 뇌 질환 예방의 효능이 있다고 한다.

보라색 꽃은 겸손과 사랑, 흰색 꽃은 순진한 사랑, 노란 꽃은 수줍은 사랑, 분홍 꽃은 희망이라는 꽃말을 삶의 서정으로 풀어본다. 어떤 색이든지 모두가 사랑일 터이다.

보라색 꽃이 귀엽고 사랑스러워 한 송이 따 보려고 앉았다. 나를 보고 방긋 웃는 그를 꺾을 수 없어 사진으로만 찍어 간직한다. 봄바람 타고 온 제비꽃을 봄잔치에 초대하련다. 티 없는 소박한 사랑을 알려주는 제비꽃 하나 참 곱고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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