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철 소설가

강병철 소설가

[동양일보]내 고향 서해바다는 격렬비열도에서 가장 가까운 갯마을이다. 그리고 어느 초상집에 다녀오는 저물녘, 태안 백화산 너머로 밀려오던 노을이 천수만 백사장 지나 기와집 대문으로 들어갈 참이다. 다섯 살 아들이 손바닥을 바싹 당기며.

“사람은 왜 죽는대요?”

“살아 있는 건 그냥 모두 죽는 거여.”

청보리 대궁이 휘청 휘어져서일까, 갯바람이 불면서 아들의 표정이 불안하게 흔들렸지만 나는 완존히 무심하게.

“총 맞아 죽고 전염병에 걸려 마을 전체가 한꺼번에 죽기도 하고.”

“……또요.”

“수학여행 가던 버스가 철둑길 건널목 차단기를 놓치고 달리다가 기차에 부딪쳐 죽기도 하고.”

“또요.”

“그런 사고를 피하고 또 피해도 결국 나이가 들면 늙어서 죽는당.”

“그렁께요? 죄다 목숨이 끊어지나요?”

“당근이쥐.”

“아부지, 옴마도?”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아버지, 엄마, 삼촌, 고모, 당숙, 당숙모, 이모까지 모두 죽는 게 세월의 이치여.”

아들의 표정이 불안하게 일그러지며.

“그럼 오똑허야 되나요? 나는, 요?”

“착하게 살면 돼. 말도 잘 듣고.”

소년의 얼굴이 아주 잠깐 햇살처럼 화사하게 펴졌던 것 같다.

“말은 잘 들을 거요. 일찍 일어나고 이빨부터 깨깟이 닦고.”

“착해지겠구나. 음하하.”

“죽는 사람을 보닝까……정신 바싹 차려야 할 것 같아요.”

“그럴 수 있지. 아버지도 망자를 만날 때마다 반성에 젖거든.”

내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거리자.

“말만 잘 들으면 아부지는 안 죽는 거지요?”

“아니, 죽징.”

“뮁요?”

“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지. 인간이 대자연의 이치를 거스를 수 있간디? 니가 아무리 말을 잘 들어도 ……모든 사람이건 짐승이건 식물성 동물성 할 것 없이 때가 되면 반드시 죽는다. 예외는 없어. 절대루”

언덕바지로 낮게 깔린 그림자 두 개가 발자국 움직일 때마다 서로의 몸을 밀고 당기며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문득 저무는 하늘로 시옷자(字) 대열을 그리며 날아가는 기러기 떼 풍경이 장관이어서 나 혼자 흠뻑 사념에 젖은 채.

‘저 기러기들은 어떻게 소통하면서 하늘 높이 대열을 이루며 날아갈까?’

그런 상념에 더 깊이 빠졌던 것 같다. 그러다가 잠깐 고개를 돌렸다가 다섯 살 아들의 눈물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왜 우니?”

“죄다 죽으닝께요. 격렬비열도처럼 격렬하고 비열해요.”

저무는 노을이 성큼 날아와 아들의 얼굴을 순식간에 빨간 보자기로 덮어씌우던 찰나이다. 그 아들이 서른다섯이니 삼십 년 전 사연이고.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