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결핍을 승화시켜 나가는 과정, 차분한 서술로 제시”

 

[동양일보] 총 응모작 170여 편 중에서 예심을 거쳐 올라온 10편을, 3명의 심사위원이 윤독 후에 4편을 최종심에 올렸다. 4편 모두 작품별로 각각의 장단점을 지니고 있었지만, 우열의 차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관계로 오랜 논의를 거치지 않고 당선작을 결정할 수 있었다.

‘꽃과 어둠’은 살벌한 현실에서 단톡방을 통해 사귀게 된 남녀가, 꽃으로 진실한 마음을 서로 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어렵게 기회를 잡아 성사된다는 평범한 이야기다. 상대방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 줄 때는 ‘어둡고 쓸쓸한 세상에도 빛이라는 게 있다는 걸 느낄’만큼 진실하고, 상대에게 전할 꽃을 들고 있을 때는 ‘삭막한 세상도 꽃처럼 보인다’는 마음들이 순수하지만, 구성이 단순하고 결말처리도 안이하게 처리된 느낌이다.

‘메이저 아르카나 13번’은 우연히 뽑아 든 타로카드 한 장 때문에 현재의 작은 불상사는 물론 오래된 과거의 실수나 실패, 불운까지 소환, 전전긍긍하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불안해하던 일들이 정상으로 돌아가고 ‘지옥 같던 밤이 완전히 복구되었음’을 확인, 평정을 되찾는다는 내용이다. 이태원 사고 등 다양한 사건들은, 소설의 긴장감을 높이는 효과가 있지만, 근거 희박한 일에도 불안에 휘둘리는 인간의 심리적 허점을 제시하는 것인 만큼 소재의 선별, 요약과 화자(話者)의 심리변화 과정을 좀 더 파고들었더라면 주제가 더욱 선명해졌을 것이다.

‘하늘 끝방’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양하지만, 소설의 주 무대인 모텔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은 모텔의 대리사장인 화자와 모텔의 장기투숙객인 은희 두 사람이다. 두 사람 이 보낸 유소년기는 물론, 지금도 행복하지 않지만 자기 본분을 지키며 산다.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호감을 느끼면서도 마음의 문을 닫고 있던 두 사람이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차분히 그려냈다. 모텔의 진짜 사장도 역시 불행한 가족사를 지녔지만, 화자와 은희 두 사람의 결합을 진심으로 원할 만큼 신의 있는 인물이다. 자칫 불륜의 냄새가 풍길만한 환경에서 선하고 진실한 사람들의 가식 없는 사랑이 모텔의 ‘하늘 끝방’에서 꽃을 피우게 되리라는 예감을 갖게 한다. 문장이 차분하고 원만하지만, 긴장감이나 반전의 묘미를 살릴만한 기복이 없는 단조로운 구성이 아쉬움을 남기는 작품이다.

‘프리다 칼로의 도마’는 신체나 정신적 결핍(缺乏)으로 인한 상처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사람의 얘기로 흔치않은 소재를 다룬 작품이다. 작중의 화자는 어린 시절 동생의 죽음과 암으로 고통받던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깊은 상처를 받고 좌절한다. 하지만 더 깊은 상처를 안고도 고통을 극복, 화가의 길을 걸어온 프리다의 삶을 통해 삶의 의지를 다져 나간다. 세상엔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이들보다 더 많은 사람이 상처를 안고 산다. 상처가 주는 아픔, 고통을 극복하는 사람만이 가치 있는 삶을 누린다. 그러한 삶의 승화가 예술 혹은 학문을 이뤄내는 것이다.

‘이제 당신보다 더 오래 그리면서 버텨보려 합니다.’라는 화자의 독백(편지)은 이 작품의 주제를 명확히 해 주는 동시에, 화자 스스로 의지를 다지는 일종의 선언인 셈이다. 소소한 흠결 지적이 있었으나, 다루기 어려운 소재를 무리 없이 잘 소화 해 냈다는 점에서 심사위원 의견일치로 당선작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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