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들, 법이 정한 권한이 있다고 권력자가 된 것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동양일보]충청북도 11개 시·군을 관장하는 도청이 있고, 충북도민 159만명 중 절반이 넘는 86만 시민이 살고 있는 청주시는, 충북의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를 이끄는 행정 중심 도시다. 그래서 청주시장의 역할은 때로 충북도의 좌표座標가 되어 주목받게 된다. 역대 청주시장 중 청주를 ‘문화도시’로 만들기 위해 방향을 잡고 밑그림을 그린 시장이라면 단연 나기정(羅基正·87·청주시 서원구 분평동 주은프레지던트 아파트)전 시장을 꼽지 않을 수 없다. 그는 1992년 관선(21대) 시장으로, 1998년 민선 2기 시장으로 두 차례 청주시장직을 수행했다.

 

관선·민선 두 차례 청주시장 역임 ‘문화시장’으로 불려


나 시장은 1961년 국무원 사무처(현 행정자치부)에서 공직을 시작, 지방국 특수지역과 사무관 때, 방 한 칸에 3대가 살아가는 등의 탄광촌 노동자들의 비참한 실상을 사진 자료 등으로 보고해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264억원을 지원받아 주택건립 등 환경개선 사업을 한 일을 행정관의 첫 보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진천·영동군수, 대통령 비서실을 거쳐 강원도 고성에서 삼척까지 9개 시·군을 관장하는 동해출장소장이 된 2년 후 태백시장이 된다. 1989년 충북도 기획관리실장으로 고향에 돌아오면서 그의 ‘고향사랑’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선진국의 과학산업단지를 돌아보고 청주 오창과학산업단지 조성계획을 세워 한국의 실리콘 밸리의 청사진을 만들었다. 청주에 예술문화회관(현 청주예술의전당)건립 계획을 세웠고, 충주 중앙탑 정비계획 등 버려진 문화유산 보존대책도 구체화 시켰다.

21대 청주시장으로 임명되면서 문암쓰레기 매립장과 청주광역권 쓰레기매립장을 취임과 함께 추진하면서 도시 환경조성의 고삐를 당겼다. 현존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 ‘직지’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공식 등재(2001년)와 ‘직지상’ 제정(2004년)과 시상금 (3만달러)을 부담하고 2년마다 시상은 유네스코와 함께 청주시에서 시상식을 하기로 확정한 것도 그의 땀 밴 노력의 결실이다. ‘직지’고장 명성 제고를 위해 고인쇄박물관을 세우고 미국 4개 도시 순회전시회를 열어 해외동포들의 자긍심을 심어 주었다. 시민들은 이때부터 그를 ‘문화시장’이라 칭했다. 고속·시외버스 터미널 이전과 청주 외곽순환도로 개설공사로 도심 교통난 해소를 과감하게 단행한 것도 그의 관선 시장 때의 업적이었다.

1998년 청주시민들은 그를 민선 2기 청주시장으로 선출했다. ‘창공에 펼친 미래’를 내걸고 청주국제항공엑스포를 개최하면서 청주를 항공산업의 메카로 육성키 위한 포석을 놓았다. 그에게는 이 행사가 지속되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공예산업이 앞으로의 먹거리가 될 것이라는 확신으로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를 개최했고, 공예관도 건립했다. 다른 지역과 특화된 평생학습도시로 만들어 교육도시 청주의 외양과 내실을 꾀하기도 했다.

‘문화밖에 모르는 고집불통 시장’이란 비아냥도 있었다. ‘이론과 실무 겸비 행정가’란 공직자들의 평가도 남는다. ‘믿음은 서로 다른 이를 하나로 만들고, 의로움은 대중을 얻는다’는 그의 평소 신념이 아직도 유효한지를 알고 싶었다.
 

 

세종대왕 행궁 성역화에 깊은 관심, 유산 임야 4만평 희사도


나 시장이 2002년 민선 3기 청주시장 재선에 실패한 후 공직을 떠난 지 어느새 20년이 훌쩍 지났다. 그는 근래 세종대왕 행궁지 성역화 사업에 관심이 깊다. 이 사업은 어찌보면 그와는 숙명적인 일이 아닐까 싶다. 그는 청주서 40리 떨어져 있는 청주시 내수읍 우산리에서 태어났는데, 이곳은 바로 세종대왕이 안질 치료와 한글 창제에 심혈을 쏟기 위해 행궁을 차려 120일(4개월)간 머물던 초정리 인접지역이다. 그래서 지난해엔 훈민정음기념사업회(회장 반기문 전 유엔사무처장)가 ‘훈민정음탑’ 건립을 현재 행궁을 재현해 놓은 초정리로 해 줄 것을 건의했고, 지난 해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임야 4만여 평을 희사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 같은 그의 용단은 가족력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는 가난했지만 조부는 청주향교의 전교典校와 유림회장, 선친은 성균관 전학典學을 지낸 학문중시의 가문에서 자랐다. 고향의 비상초와 청주중·고 고려대, 동 대학원을 나와 줄곧 공직에서 일생을 보내는 동안 학구적인 자세를 저버리지 않은 것은 그 같은 ‘뿌리’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무릎이 아파 잘 걷지 못하는 아내(노양자·80)부양을 위해 자식들(1남2녀)이 사는 서울에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나 해야될 일들이 청주에 있어서 매월 2, 3차례 혼자 내려와요. 청주에 오면 식사문제 등이 마음 쓰이지만 공직에 있을 때 객지 생활을 하느라 취사를 익혀서 큰 불편이 없어요. 간단하게 때를 때우거나 청주엔 그래도 맛집이 많아서 지인들과 식당 밥을 먹는 맛도 새로워요.”



●결코 짧지 않은 생애를 살아오면서 늘 되새기는 좌우명이 있다면?

“초등학교 5학년 때 교장(채건홍)선생님이 불쑥 교실에 들어오셨어요. 모두 긴장하고 있는데, ‘앞으로 여러분들이 졸업하고 나가면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서, ‘세상에는 꼭 필요한 사람, 있으나 마나 한 사람,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 있는데 여러분은 꼭 필요한 사람이 되도록 공부도, 일도 열심히 해 달라’는 말씀이었어요. 그 말씀이 나이 들어갈수록, 공직에서 승진을 하여 권한이 늘어 갈수록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어린 시절의 교훈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게 합니다. 교육자들만이 아니라 학부모들도 되새겨 봄직 하지요”

 

현 정부, 좌표설정 잘 됐으나 경험 부족 인지 추진 동력 약해


●현 시점에서의 당면과제라면?

“요즘 시대상은 나라의 미래가 걱정될 정도지요. 지방정부를 살려야 합니다. 권력이 특정하게 집중되면 안 됩니다. 당론이 모든 것을 결정하면 지방정부가 왜 필요합니까. 미국을 보세요. 지방의 특성이 다양하게 모아져야 국가가 건강해 집니다. 당이 시키는 대로, 중앙 정부의 지시대로 지역의 정치, 행정이 따라가면 지방자치는 어디로 갑니까. 스웨덴 핀란드 스위스 등이 자원이 많아서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의 국회의원들 보세요. 비서가 9명이나 돼요. 지방의회 의원들도 문제예요. 모두 귀족화되어 가고 있어요. 그 막강한 권력과 당리당략으로 불철주야 싸움이나 하니 국민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지요. 결국은 권한을 뺏기지 않으려는 싸움질에 국가가 멍들고 있어요.”



●어떤 대안이 없을까요?

“현행 소선구제는 의원들이 표밭 관리를 위해 애경사만 쫓아다니게 만들고, 세대 간 불통의 시대만 이어가지요. 비례대표제도 없애야 한다고 봐요. 공직자 수도 줄여서 일하는 공직자상을 되찾아야 해요. 영국의 대처 수상 보십시오. 전통적인 공직자들의 권한 고착화를 깨고 모든 업무를 민간과 공공기관 경쟁체제를 만들어 활성화시켰어요. 그런 피나는 개혁으로 영국을 살렸지요. 우리 윤석열 정부도 좌표설정은 잘 된듯한데 추진세력의 동력이 약한 듯합니다. 경험부족인지 모르나 더 치열해야 된다고 봅니다.”



●공직에 있을 때의 보람이거나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공직에 40년 넘게 있었어요. 지방행정을 다루면서 아직도 왕정시대처럼 중앙집권 체제가 지역민들 삶의 발목을 잡고 있음이 안타까웠지요. 진정으로 자치시대가 열려야 지역특성에 맞는 행정이 펼쳐질 것입니다. 지역 특성을 살리지 못하는 일방적인 행정이란 결국 민생의 미래를 포기하는 결과를 가져 올 것입니다. 몇 년 전에 보니까, 2년에 한 번 청주에서 개최되는 ‘직지상’ 시상식에 유네스코 측만 나오고 3만달러 시상금을 내는 청주시장은 시상자에서 빠지는 것을 보았어요. 유네스코와의 협약은 함께 시상하는 것이었는데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아쉽기만 합니다. 무릇 문화산업이 시민의 삶을 고양시키고, 행복을 담보한다는 사실을 일선 공직자들이 빨리 자각했으면 합니다. 모든 행정이 결국은 문화를 입히는 작업이지요”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시는지요.

“일주일에 3,4일 정도는 1시간 쯤 걸어요. 운동에 큰 취미가 없어서…”

 

세종정신 일깨울 교육관 절실 청·장년들 열정과 꿈 키워야


●요즘 하고 있는 일은?

“두 가지를 신경 쓰고 있어요. 첫째는, 초청리 세종대왕 행궁에 교육관을 만들어 세종임금의 정신을 일깨워야하는 사업 추진이고, 둘째는 책을 쓰고 있어요. 청주가 세계문화도시의 꿈이 실현될 수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과 방안에 대한 내용이지요. 덧붙여 후손들에게 전할 석가나 예수의 말씀을 간추려 삶의 지침이 될 수 있도록 쓰고 있는데 3개월 쯤 후엔 발간될 것입니다.”



●공직 후배들이나 다음 세대에게 전할 메시지라면…

“공직자들은 법이 정한 권한이 있다고 마치 자기가 권력자가 된 것으로 오판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청·장년들은 열정과 꿈이 있어야 행복이 온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긴 시간,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조철호 시인·동양일보 회장
조철호 시인·동양일보 회장

 

/조철호 시인·동양일보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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