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을석 청주 봉덕초 교감

박을석 청주 봉덕초 교감

[동양일보]이른바 ‘정순신 사태’가 한동안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다. 범죄수사를 총괄하는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된 사람과 그 아들 이야기. 학교폭력에 대한 처벌을 회피하기 위해 온갖 사법적 방법을 이용하여 가해자 학생은 실질적으로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명문대 진학을 했다는 것.

이들에 대한 분노가 컸던 만큼 정부의 대책이라는 것도 비교적 서둘러 나왔다. 학교폭력 기록 보존 기간 연장과 입시 불이익 확대에 초점을 두었다. 출석정지, 학급교체, 전학 등은 졸업 후 4년간 기록을 보존하고, 점차적으로 대학 입학전형에 필수 반영하겠다는 것.

역시 대책은 처벌 강화와 정교화에 무게 중심. 물론 피해학생 보호 강화도 일부 보이기는 한다. 가해 피해학생 즉시분리기간 연장, 학교장 긴급조치 영역 확대 등. 이러한 대책이 학교폭력 문제의 해결 또는 감소에 기여할까, 또 학교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다들 생각이 많을 것 같다.

2004년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폭법)이 처음 제정되고 20년이 흘렀다. 그 동안 법률과 시행령이 각 20여 차례씩 개정되었다. 2008년 전부개정을 한 번 한 것을 제외하고는 타법 개정에 따른 개정과 조문 일부 개정이 대부분이다. 개정 사항은 가해자 처벌 강화 및 피해자 보호 강화가 대다수이다.

이번 대책의 주 내용인 입시 불이익 강화는 대체로 찬성하는 여론이 많다. 그렇기는 하나 가피해간 사법 분쟁뿐 아니라 학교를 상대로 한 소송도 폭증할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게 많다. 학폭법에서 규정한 처벌을 둘러싼 다툼과 갈등은 학폭 예방과 대책의 가장 뜨거운 영역 중 하나다.

2012년 법 개정으로 학교폭력의 처분 결과가 생활기록부에 기재되기 시작했다. 생활기록부는 대학입시 등 진학의 주요 자료이므로 학교폭력 조치가 입시 불이익을 가져오도록 제도화 한 것이다. 그러자 조치 수준을 낮추거나 조치 결과를 삭제하거나 불이익을 유예하기 위한 사법적 다툼이 점차 격화되었다.

학교폭력 사안의 재재심(지역위원회 재심에 대한 재심) 청구건수는 2011년 단 1건에서 생활기록부 기재가 시작된 2012에는 21건, 2013년에는 89건으로 폭증했다. 입시 불이익 제도 도입이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다툼은 최근 자료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국회 강득구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학폭위 심의결과에 대한 행정심판은 모두 2009건이고 집행정지 신청건수도 1405건에 달한다.

이러한 전례를 보면 이번 처벌(입시 불이익) 강화 조치도 더 많은 소송과 더 격렬한 다툼을 불러오리라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처벌이 강화될수록 가해자는 피해자를 쌍방폭력의 당사자로 만들거나, 처분절차를 무효화시키기 위해 학교를 상대로 싸우게 된다. 한 번 잘못을 저지르면 인생을 망치게 된다며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이런 역효과를 살펴보는지 모르겠다.

최근에 강력한 법치를 주장하는 <한비자>를 다시 읽었다. 여기서 법치는 엄격한 상벌의 시행을 가리킨다. 한비자는 상벌이 혼란 없이 시행되면 질서가 유지되고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질 것이라고 말한다. 또 군신간의 사랑이나 유학자의 인의는 헛된 말놀음에 불과하다고 평한다.

한비자 등의 사상을 기반으로 진은 중국을 통일하였으나 불과 15년 만에 망하였고, 진을 이은 한나라 등 이어지는 거의 모든 나라는 한비자가 그토록 경멸한 유교를 국가 통치이념으로 채택하였다. 이것은 어찌 된 일인가. 상벌만으로 안 되는 도덕의 영역이 있다는 것인가.

상은 어떤 행동을 유도하고 벌은 어떤 행동을 회피하게 한다. 상을 좇고 벌을 피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지만, 인간은 많은 다른 이유로 상을 버리고 벌을 무릅쓰기도 한다. 외적 동기인 상벌 말고도 인간 내면의 동기도 존재하는 것이다. 윤리적 선택, 가치의 실천 영역 말이다.

어떤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상벌도 만능이 될 수 없고 인의, 도덕도 만능이 될 수 없다. 학교폭력 대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기는 하나 처벌을 강화하여 학교폭력을 막겠다는 것은 말하자면 대증적 처방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조선 시대에도 살인은 사형에 처하는 법이 있었지만 살인이 끊이지 않은 것은 왜인가.

그래서 인간의 내면으로부터 시작하는 교육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성찰과 반성, 관계의 회복, 인권의 존중, 평화로운 문화의 창조 등 교육에 방점을 둔 노력이 더 경주되어야 하지 않을까. 교육을 통한 인간 행동의 변화가 더 근본적 대책이지 않을까. 학폭 대책에서 다시 교육의 영역을 살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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