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선규 한방재활의학과 전문의·충북한의사회 정책기획이사

염선규 한방재활의학과 전문의·충북한의사회 정책기획이사

[동양일보 ] 지난 3월 29일, 많은 선·후배 한의사들이 세종시 국토교통부 앞에 모였다. 지난 2월 강원도 원주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앞에 이어 올해만 벌써 두 번째다. 정말 막역한 사이라 하더라도 각자의 진료실을 지키느라 1년에 한 번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현실이기에 반가울 법도 하지만 면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최소한의 진료권마저 침해받아 더 이상은 가만히 있을 수 없어 환자들을 뒤로 하고 집회에 나와야 하는 현실이 참담했기 때문이다.

어떠한 정책을 입안하거나 수정하고자 할 때 가장 중심이 돼야 하는 지점은 바로 그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하지만 고객의 의견, 고객의 유불리에 대한 설명은 없고 보험업계의 주장만 가득하다. 실제 각종 경제매체에서는 광고계의 큰손이라 할 수 있는 손해보험사의 주장을 바탕으로 자극적인 제목을 뽑아내며 한의계를 비판하고 있다. 자동차보험 진료비 청구금에서 한방이 차지하는 비율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자료, 약침과 첩약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통계자료 등을 내세우면서 속칭 ‘나이롱 환자’라 불릴만한 자극적인 사례를 덧붙여 상황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자극적으로 다가가고 있다.

손해보험사들은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다. 따라서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실제 2022년 상반기 기준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77.1%로, 2017년(77.8%) 이후 최저 수준을 정도로 역대급 성과급 잔치를 벌인 사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것이 당연할 수 있다. 또한 2020년 기준 자동차보험금은 총 14.4조원으로, 교통사고로 인한 물적손해보상 7.8조원(54%), 인적손해보상 6.3조원(43%) 중 한방 의료비는 0.9조원(6%)로 향후 치료비(1.7조, 11%), 위자료 등(2.0조, 14%)보다 훨씬 낮은 비중이라는 점도 말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한방의료비가 증가한 만큼 양방의료비는 줄어들은 이유가 치료만족도에서 온 쏠림 현상임도 모른 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첩약의 분량을 나타내는 단위인 제나 첩 단위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거나, 왜 ‘첩약 건강보험 적용 시범사업’에서도 10일분 단위의 탕전 비율이 99.7%에 이르는 이유가 한약의 효과성을 담보할 수 있는 최소량이기 때문인 것도 모르고 숫자만 내세워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주장을 할 수도 있다.

매 3년마다 진행되고 가장 최근에는 2020년에 있었던 ‘한방의료이용 및 한약소비실태조사’를 볼 때, 전 국민의 70% 이상이 한방의료를 경험해봤으며 그중 78.3%가 재이용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한방의료를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90% 정도가 질환치료를 위해 방문했으며, 외래 혹은 입원치료의 가장 큰 이유로 치료효과가 좋다(외래 57.4%, 입원 71.9%)는 것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한방의료 이용을 늘리기 위해 건강보험보장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외래 51.6%, 입원 67.1% 등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목소리들을 외면한 채 국토교통부가 한의진료비 상승이 한의사의 과잉진료 탓이라는 보험업계의 일방적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한의사의 치료 권한인 첩약 처방 일수까지 제한하려 하기에 한의사들이 진료실을 박차고 나가 삭발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지난 30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홍주의 대한한의사협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충분한 숙의를 거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향후 한의사들이 일선에서 온전히 환자의 진료에 힘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길 간절히 기대한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