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기 한국교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박병기 한국교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동양일보]2023년 4월 15일은 세계 에너지 활용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날이 되었다. 1969년 첫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했던 독일이 50여년 만에 마지막 남은 3개의 원자력발전소 가동을 중단한 날이기 때문이다. 총 전력 생산의 30%를 넘어섰던 독일에게 탈원전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었다. 대체에너지의 부진과 최근의 석유에너지 공급 위기 등을 겪으면서 반대의 목소리가 수그러들지 않았지만, 녹색당을 비롯한 연합정권의 결단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우리에게 원자력은 두 가지 뿔로 다가와 있다. 하나는 원자력발전소이고 다른 하나는 핵무기이다. 이 둘은 본래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폭력적 활용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혀온 것이지만, 원자의 폭발력에 근거한 활용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우라늄과 라듐이라는 자연물질이 지니는 방사능과 폭발력을 활용한 핵무기의 위력은 일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 사태에서 충분히 증명되었다. 순간적인 섬광과 그 이후 떨어지는 낙진까지 인류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무서운 살상력과 후유증에 치를 떨어야 했다.

그에 비하면 원자력발전소는 한때 ‘가장 경제적이고 청정한 에너지 생산기지’로 각광받았다. 초기 비용이 들기는 하지만 이런 ‘경제성’과 ‘청정성’으로 인해 많은 나라가 적극 도입하고자 했고, 우리도 그 대열에 기꺼이 합류해서 세계적인 원자로 건설 기술까지 보유하게 되었다. 그런데 구 소련지역의 체르노빌 폭발사고와 이웃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지면서 그 자부심과 안정감에 심각한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의 경우는 이른바 ‘안전 선진국’이라는 평가를 받는 나라여서, 어떤 나라의 원전도 결코 안전할 수 없다는 공포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핵폐기물 처리라는 또 다른 난제가 더해지면서 이제 원자력 발전은 포기해야 한다는 탈핵 움직임이 본격화되었다. 우리도 10여 년 전부터 그런 움직임에 동참해왔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은 원자력 발전소를 더 확대하고 수출까지 함으로써 큰돈을 벌 수 있다고 믿게끔 하고자 했지만, 탈핵의 절박함을 외치는 목소리 또한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했다. 필자도 참여했던 ‘탈핵도보순례’도 그런 목소리 중 하나였고, 다행스럽게도 촛불 정권이라 불린 문재인 정부에 의해 탈핵정책이 본격적으로 펼쳐질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정책이 구체적으로 펼쳐지는 과정에서 두 가지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하나는 원전을 줄임으로써 더 비중이 커진 화력발전소로 인한 미세먼지 악화 문제였고, 다른 하나는 대체에너지 확보를 위한 정책의 무계획성으로 인한 전국의 태양광 기지화 문제였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 등장한 흉측한 태양광 장치와 미세먼지 공포를 원전마피아들이 적극 활용한 결과, 우리는 어렵게 시작한 탈원전 정책을 쉽게 포기하고 더 늘리겠다는 정책을 내세우는 후보에게 더 많은 표를 주었다.

원자력 발전과 핵무기의 위험성을 사실과 다르게 과장해서도 안 되지만, 경제성과 편의성에 기대서 축소하거나 간과해서도 안 된다. 물론 현실은 힘이 세다. 우리 일상을 붙잡는 관행과 편리함이 지니는 막강한 영향력에 대해서도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면서 보다 나은 방향으로의 전환을 시도해야 하는 이유이다. 시한을 정해 원자력 발전소를 줄여가면서 결국 완전히 멈추는 정책을 만들어 시행하기 위해서는 전 국민적 합의와 함께, 그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많은 불편과 문제들에 대한 대응책도 면밀하게 검토해 마련해야만 한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지속적으로 만들고 있는데 우리만 핵무기와 관계없이 살아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미 차고 넘치는 세계의 핵무기를 더 늘려가야 한다는 주장에 쉽게 동의해서도 안 된다. 현재의 핵 위기에 대응하는 단기적인 대책과 함께, 세계적인 핵무기 감축협상을 이끌어내는 데 우리가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를 동시에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원자력 발전소도 최소한 더 늘려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먼저 작은 불편도 참아내지 못하는 내 안의 원전마피아와 마주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런 정책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정당과 정권이 등장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함께 조성해갈 수 있을 때라야 비로소 미래를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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