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구 바이오톡스텍 대표·충북대 수의대 명예교수

강종구 바이오톡스텍 대표·충북대 수의대 명예교수

[동양일보]얼마 전 “50년 전 박정희가 씨앗 뿌린 100조 수주 방산코리아”의 기사를 보고 숨은 방산(방위산업)의 선구자인 선친이 생각났다. 1970년 초 우리나라는 소총은 고사하고 총알 하나 못 만들던 국가였다. 총알생산에서 시작된 방산이 세계를 주름잡는 방산강국이 된 것은 필자에게는 감동이었다.

필자는 군인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 휴전선 근처를 맴돌았다. 최전방에만 있다 보니 집은 늘 부대 안 관사였다. 1968년 강원도 철원에 있을 때 1.21 무장공비 청와대 습격이 일어났고 휴전선을 넘어 퇴각하는 잔류공비와의 교전 총소리 때문에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야전군 지휘관만으로 옮겨 다니던 선친은 필자가 중 1이 되서야 서울로 전출했고 대령으로 장군 진급을 앞둔 1972년 갑자기 예편을 하셨다. 선친은 포병 출신으로 포술학과 탄약전문가였는데 같은 포병, 대통령의 부관이었던 인연으로 신생기업이었던 P기업에 가게 됐다. 선친은 5.16 혁명 때 대통령의 부름을 받았지만 거부하고 군인의 길만 걸었다. 1972년 두번째 부름인 탄약국산화 명령에서는 기업을 통한 자주국방 또한 군인의 소명이라 생각하고 후회없이 군복을 벗으셨다.

탄약의 국산화 배경은 이러하다. 당시 박 대통령은 월남전 참전 댓가로 미국에게 모든 파월병사에게 최신 무기인 M16 소총을 지급하게 했다. 귀국병사들은 M-16 소총만 갖고 귀국하되 총알소지는 불가했다. 이에 귀국 병사들은 애국심에 가능한 모든 총알, 포탄과 소총을 귀국박스 속에 숨겨 빼돌렸다. 총알과 포탄은 소모품이라 미군은 신경을 안썼고 소총은 손망실 처리했기에 가능했다. 어느 날 귀국 병사들의 귀국박스를 선박에 옮기는 도중 총알과 소총의 무게로 박스밑이 터지면서 선창에 흩어져 발각되었다. 미군의 무기반출 감시가 강화되자 전사자의 관속에까지 소총과 총알을 숨겨 보냈다. 더 이상 무기의 불법반출이 불가능하게 되자 소총은 고사하고 총알이라도 생산하자는 대통령의 계획에 신생 P기업이 처음 방산에 참여했다. 이에 선친은 대통령의 추천으로 1973년, 안강탄약공장 설립과 탄약 대량생산 책임을 맡게 됐다. 탄약의 국산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미국에서 제조기술을 전수해주지 않아 공장 폭발사고로 사상자가 나고 안강 시내 유리창이 깨지는 큰 피해가 있었지만 좌절치 않고 국내 기술로 탄약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당시 군 복무 중이던 필자는 사격 시마다 총알 뒷면에 PS라는 제조사명을 보고 선친에 대한 자부심에 특등사수가 되고자 노력했었다. 군인의 아들인 것이 자랑스러웠고 충정심으로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아아~이슬처럼 죽겠노라 생각했었다.

한국은 경제 선진국이면서 아직 전시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다. 이런 위기 상황을 기회로 만들어 자유민주주의의 무기고 역할을 하는 세계적 방산강국이 됐다. 선친이 1973년 근무했던 P기업은 이제 총은 물론 전차·자주포 등에 사용되는 모든 포탄을 생산하는 글로벌 탄약제조기업이 됐다. 최근 우리의 탄약비축량은 세계 최고로 우크라이나에 탄약 지원 가능성도 논의되고 있다. 작년 K-방산은 사상 최대 규모 판매계약으로 수주 잔액은 100조원을 넘어섰다. 50년 전 총알 하나 못 만드는 방산 황무지에서 선친은 방산의 씨앗을 처음 뿌려 탄약의 대량생산과 국산화의 초석을 다지셨다. 길은 다르지만 필자는 바이오톡스텍을 바이오 강국을 선도하는 글로벌 바이오인프라 기업으로 도약시켜 선친의 유지를 이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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