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진 교육학 박사

김시진 교육학 박사

[동양일보]5월은 많은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달이다. 꽃향기가 가득한 싱그러운 계절의 여왕 5월은 우리의 마음 한 켠에 ‘광주’와 ‘노무현’이라는 생채기를 남겼다. 14년 전 그날의 기억은 나에게도 생생하다. 무슨 영화를 봤는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조조 영화가 끝나갈 때쯤 누군가에게 서거 소식에 관한 문자를 받고 놀란 마음에 집으로 달려가 뉴스를 틀었다. 다음 날 출근하는 길 버스에서는 그를 추모하는 사연과 노래가 끊이지 않았고, 나 역시 영결식이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기사를 읽거나 영상을 보며 울컥 울컥 눈물을 쏟아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역대 대통령을 묻는 조사에서 늘 최고로 꼽힌다. 대통령으로서 그의 성과에 대해서는 극단의 평가가 오가지만, 세월이 지나도 정치인 노무현이 국민의 가슴 속에 살아 숨 쉬는 것에는 모두가 공감하는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민주주의를 우선에 두었던 원칙과 소신, 검찰개혁, 언론개혁, 지역주의 타파 등 시대정신을 위해 정면돌파를 선택했던 정치 역정, 서민의 답답한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던 특유의 직선적이고 탈권위적인 언어는 강렬하면서도 따뜻한 매력의 정치가를 만들어냈다.상대가 재벌회장이든 독재자이든 빈틈없는 논리와 정곡을 찌르는 질문으로 그들의 말문을 막았던 5공청문회의 장면, ‘이의 있습니다’라며 결연히 반대토론을 외치던 통일민주당 3당합당 결의 전당대회장의 장면, 지역주의와 싸우기 위해 포기하지 않았던 부산의 공터에서 나 홀로 연설을 하던 장면, 평검사들과 마주 앉아 노골적인 무시와 모욕의 말투와 눈빛을 감당하던 장면들은 우리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각인되었고 시간이 갈수록 무거운 빚으로 쌓이고 있음을 느낀다. 그가 그토록 외치던 가치를 우리는 왜 끝내 지켜주지 못했는가.

2023년 5월, 유난히 그가 생각나는 이유는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정치가의 면모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영미권에서는 정치인을 일컫는 단어가 두 가지 있다고 한다.

politician과 statesperson이 그것인데, 일단 권력만 얻고 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정치인들을 politician이라고 하는 반면, 나라의 장래를 멀리 내다보는 정치인 다운 정치인, 존경받는 정치가를 statesperson이라고 한단다. 최근 유시민 작가는 비슷한 맥락에서 ‘정치업자’와 ‘정치인’의 두 부류로 이들을 나눈 바 있다. 원칙이나 신념 없는 언어, 혐오와 갈라치기만을 위한 선동, 대한민국의 미래가 아니라 자신의 당선만을 위해 영혼을 팔고 있는 것만 같은 행태의 오늘 우리 사회의 정치업자들에게서 많이 이들은 절망감을 느끼고 있다.

암울한 한국의 정치상황을 바꾸어 내는 힘은 노무현 대통령이 강조했던 ‘깨어있는 시민’에게 있다. 경제위기와 안보 불안, 4차산업혁명과 인구감소 등 급격한 사회변화, 기후위기와 다양성, 연대와 복지 등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시대 정신을 가진 정치가를 시민의 대변자로 요구해야 한다. ‘그놈이 그놈’이라는 정치 혐오에서 벗어나 정치인으로 하여금 변화를 갈망하고 끊임없이 도전하게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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