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 증평문인협회·수필가

김미경 증평문인협회·수필가

[동양일보]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오월, 어버이날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친정엄마를 생각하며 나의 유년시절로 회기 해 본다, 김해 김 씨 종손가의 장손에게 시집 온 열일곱 살 새댁은 첫딸을 생산 한 뒤. 두세 살 터울로 내리 딸만 여덟을 낳으셨다, 지금은 딸이 더 좋기도 한 세상이나 전통문화의 고장 경북 성주 땅에서 딸만 여덟을 낳은 종갓집 며느리의 삶이 어떠했을까. 그 시절 아들을 낳지 못하면 남의 배를 빌려서라도 대를 잊기 위해 아들을 낳으려던 시절이었다, 내가 성장해서 들은 이야기지만 장남인 아버지는 부모님을 모시고 시작한 신접 살림에 딸만 내 리 셋을 낳자 구박을 걱정한 나머지 어머니와 딸들을 데리고 집을 나오셨다고 한다, 조부모님께서는 집 나서는 아버지에게 고작 보리쌀 한말을 주셨다.

그러나 아내와 자식들과 행복할 수만 있다면 두려울 것이 없으셨다고 했다, 하지만 작은 아버지는 아들만 일곱을 두셨다, 그러다 보니 조부모님께서는 대를 이어갈 작은집에 모든 제산을 물려주셨으나 아버지는 꿋꿋하게 견디시며 가정을 지켜 내셨던 것이다,

나의 유년시절 동네사람들은 온갖 꽂 들이 철 따라 피는 마당이 있는 우리 집을 ‘팔 선녀 집’이라 불렀다. 먹을 끼니조차 걱정하는 가난한 살림이었지만 팔 선녀 집 딸들은 행복했다. 따가운 종중사람들의 눈초리를 한 몸에 받으셨던 엄마는 그러나 마음이 바다 같은 분이셨다. 내리사랑이라 했던가. 팔 선녀 가운데에서도 막내인 나에 대한 보살핌은 극진 하셨다.

그 당시에는 재봉틀이 귀했다. 엄마는 항상 재봉틀에 앉아 계셨는데 자식들에게 손수 옷을 만들어 입히는 것을 즐겨하셨다. 정갈 하시며 항상 얼굴엔 웃음기를 띠고 계셨고 손재주가 있으셨다. 지금도 아련한 내 기억 속엔 잔잔한 체크무늬 분홍원피스가 있다. 목선과 소매 둘레를 동그랗게 파고 치마 주름은 앞뒤로 두 개씩 가지런히 잡았다. 해뜨기 전 이슬 내린 마당자리위에 옷을 잠시 펼쳐 놓았다가 숯을 넣은 다리미로 반듯하게 다려 주셨다. 구김 없이 반듯하게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으리라.

다리미에 숯은 항상 아버지가 넣어 주셨고 마당 자리 위에 잠시 펼쳐 놓았다가 다림질을 하신 이유는 한참 뒤에 알았다. 달맞이 꽃잎 터지고 반딧불이 떼지어 소풍 가는 무더운 여름 밤이면 마당으로 나가 자리를 펴고 아버지는 모깃불을 피우시고 어머니는 우리가 잠 들 때까지 부채질을 하셨다. 풀벌레 소리 자장가 삼고 덮고 누운 밤하늘엔 은하수가 냇물처럼 흘렀다.

겨울이면 따끈한 아랫목에서 스웨트를 떠서 입혀 주셨고 우리는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누워 털실 뭉치를 갖고 놀다 잠들곤 하였다. 저녁에 시작하면 밤새워 옷이 완성 되었다. 한 올 한 올 사랑이 엮어져 작아진 옷이 큼지막한 옷이 되었다. 아버지 조끼며 목도리 장갑 뭐든 척척박사였다.

입던 옷을 다시 풀어서 뜰 때에는 뜨거운 물에 담가 소쿠리에 건져 말리셨다. 아침이면 엄마의 경대 앞에 모여 앉아 머리를 빗어 주시고 옷 매무새를 단정히 할 것을 당부하셨다. 팔 선녀집 늦둥이를 그리도 애지중지 챙겨 주시던 우리 친정엄마, 오늘도 빛 바랜 흑백 사진 속에서 나를 향해 환한 웃음을 날려주고 계신다. 엄마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나의 삶에 자양분이 되고 아름답던 추억이 밑거름이 되었다. 이제 친정엄마를 닮은 막내딸인 내가 서 있다. 세 딸들의 친정엄마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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