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준 지명연구가·전 음성교육장

이상준 지명연구가·전 음성교육장

[동양일보]옛날 5일장의 모습은 참으로 정겨운 모습이었다.
엿장수의 가위 소리와 흥겨운 각설이 타령, 엄마를 잃을세라 손을 꼭 잡고 따라 다니는 아이들의 눈을 홀리는 화려한 색깔의 사탕과 막과자, 춘향전, 장화홍련전과 같은 소설책을 펼쳐놓고 파는 책 장사,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약장수의 구수한 만담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들고, 장터 국밥 한 그릇에 허기를 채우던 그 추억 속에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하나 더 있다. 갓을 쓰고 흰 수염을 늘어뜨린 할아버지가 하얀 종이에 화려한 색깔로 일필휘지하는 도화가는 마치 신선인 듯이 보였던 것이다. 이 신선이 바로 혁필화가였는데 오늘날 5일장에서는 사라진 옛 모습이 되고 말았고 안타깝게도 그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있다고 한다.
그러면 혁필화란 무엇일까?
혁필화는 근래에 와서 부르는 이름일 뿐이고 본래 혁필화의 뿌리는 서예의 비백서(飛白書)로 보아야 할 것이다. 중국 동한시대의 서예가인 채옹(蔡邕)이 창조했다고 전해지는 비백체의 글씨체는 진나라, 한나라, 당나라, 송나라 시대에 널리 쓰였으나 원나라 이후에는 서예의 영역에서 멀어지고 민간에서 전해질 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 후기에 서예의 영역에는 들지 못하지만 민간에 유행하면서 버드나무나 대나무의 가지를 깎아 그 끝을 갈라지게 하여 먹을 찍어 그림과 함께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 등의 글자를 쓰는 등 주로 유학에 바탕을 둔 교육적인 내용이었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의 힘들고 우울한 시기에 빠른 템포의 신나는 노래인 ‘감격시대’라는 노래가 유행했듯이 민간에서 화려한 색채를 사용하는 색채 혁필이 등장하여 6.25전후까지 우리 민족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는데 큰 위안이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혁필화는 우리 나라가 고난을 겼던 어려운 시기에 우리 민족과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귀중한 전통 민속이며 문화적 유산이므로 사라지기 전에 재조명하여 맥을 이어가는 것이 후손된 도리라 생각된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혁필화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혁필화는 그림을 통하여 글씨를 표현하는 것이 목적이며, 원래부터 서예에서 비롯된 것이니 만큼 서예의 영역에서 다루어야 할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대부분 그림이 가미된 글자라는 점에 주목하여 영어권 국가에서는 레인보우 캘리그라피(rainbow calligraphy), 중국은 화조자(花鳥字) 혹은 혁서(革書), 일본은 화문자(花文字)라 하여 글자임을 강조하고 있다. 글자를 아름답게 쓰는 것을 글자 쓰기의 예술 즉 서예라고 한다면 당연히 혁필화는 민화가 아닌 서예인 것이다.
또한 혁필화라는 명칭도 재고되어야 한다. 혁필화라고 하면 ‘가죽으로 만들어진 붓으로 그리는 그림’이라는 의미가 되므로 서예로서의 적절한 이름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널리 유행하고 있는 ‘캘리그라피(calligraphy)’라는 이름도 외래어를 사용하기에 우리 한글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취지에 어울리지 않으므로 이 기회에 혁필화와 함께 서예의 영역에서 아름다운 이름을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떨까?
우리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우수한 글자라는 데 세계가 공감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 한글의 아름다운 조형미를 덧붙인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 이닌가? 우리 한글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역할과 함께 한국 전통 민속의 우수함을 관광 자원화하기 위해서도 사라져가는 혁필화를 재조명하고 소생시키는 일이 시급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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