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환 수필가

양미환 수필가

[동양일보]노인요양병원의 엘리베이터 앞에 한 부부가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육십 대의 부부는 휠체어에 아내가 앉아있고 남편은 뒤에서 휠체어를 붙잡고 서 있다. 휠체어를 붙들고 있는 남편의 손에 힘줄이 툭툭 불거져 보인다. 죽어도 휠체어를 놓지 않겠다는 결의인 듯해 바라보는 마음이 찡해진다. 백세시대에 휠체어를 타기에는 조금 이른 나이다. 병력을 물으며 대화를 시작했다. 놀랍게도 부인이 쓰러진지는 이십 년이 넘었다. 사십대 후반에 쓰러진 부인을 이십 년 동안 병원에서 남편이 돌보고 있었다. 남편은 남의 손에 부인을 맡길 수 없으며 자신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 말했다. 부부의 진실한 사랑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당연히 자신이 할 일이라 말하는 남편에게 아내가 다 내 죄예요 라고 말한다. 남편은 당신 죄가 아니라고 아내를 다독인다.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다는 남편의 말이 진하게 여운으로 남는다.

병으로 휠체어 생활을 누군들 하고 싶겠는가! 인생을 살다 만나는 풍랑에 대처하는 남편의 마음이 존경스럽다.

신이 인간을 부부로 짝지어 살게 한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진리에 순응한 남편의 모습이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며 사는 게 부부다. 아내의 잃어버려 부족한 건강을 남편은 당연하게 자신의 건강으로 채우며 살아간다. 우리는 상대가 자신의 부족함만을 채워주길 바란다. 나에게 남아있는 잔존능력으로 상대의 부족함을 미약하게라도 채워 줄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한 쪽이 기우는 혼사라고 세속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모두가 혀를 차는 이유다. 두 사람의 사랑만 보면 어느 쪽도 기울지 않는다. 서로가 갖고 있는 조건이 다소 차이가 날 뿐이다. 그 조건을 따지지 않고 순수하게 시작한 사랑도 주위 사람들의 세속적인 이목을 견디기는 쉽지 않다. 세상의 잣대는 기우는 자는 주눅 들고 기울지 않는 자는 자신의 선택에 자신감을 잃게 만든다. 주눅 들어 휠체어에 앉은 아내는 스스로 죄인이 된다.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다는 남편의 말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환경 따라, 조건 따라 바뀌는 사랑이 당연시 되고 있다. 사랑은 변하는 거야라고 외치며 그 정당성을 부여한다. 힘줄이 툭툭 불거진 손으로 아내의 휠체어를 붙잡은 남편에게는 통하지 않는 말이다. 남편에게는 환경을 바꾸고 조건을 바꾸는 것이 사랑이다. 환경이 변하고 조건이 바뀌어도 절대 불변의 진리가 사랑이라 믿는 남편이다. 남편은 누군가는 경제적 지원만으로도 남편의 도리는 충분하다 했으며 또 누군가는 그만하면 할 만큼 했다고 하지만 그 말이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여러 번 반복해서 듣다보면 자신의 신념이 흔들릴까 아예 사람들을 기피하고 아내 곁에만 있는 다는 남편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된다.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다는 남편은 아내가 아직은 살아있기 때문이다. 환경이 조금 바뀌었을 뿐이다. 그 바뀐 환경을 지배하며 살아가게 하는 힘이 사랑이다. 그들의 자녀들이 그들의 사랑을 보고 배워 실천하리라 믿는 그 사랑의 힘을 다시 한 번 믿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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