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을석 청주 봉덕초 교감

박을석 청주 봉덕초 교감

[동양일보]학교 울타리에 풀 한 포기 없고 꽃 한 송이 피지 않았다. 발령을 받고 찾아온 학교 풍경은 황량하고 쓸쓸했다. 운동장 가에 서있는 느티나무는 아직도 지난해 가을의 마른 잎을 달고 바스락거렸다.

시나브로 풀이 돋고 꽃잔디가 보이는가 싶더니 돌담 사이에서 영산홍이 피어났다. 원래 있었던가 싶었는데 줄장미도 붉은 꽃덩어리를 맺었고, 느티나무도 연초록 잎으로 싱그러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코로나19로 잔뜩 위축되었던 교육활동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수학여행도 다녀오고 수련활동도 다녀왔다. 부채 한 장 펼친 것 같은 좁은 운동장에도 학년 운동회를 하느라 왁자한 소리가 넘쳐난다. 아이들의 뜀박질, 아이들의 외침에서 푸득푸득 날개짓 하는 생명의 기운을 느낀다.

이제 먹구름이 물러난 자리에 환한 햇살, 차가운 바람 지나간 자리에 꽃피는 훈풍 가득한 5월이다. 노동절도 있고, 어린이날도 있고, 어버이날도 있고, 그리고 스승의 날……도 있다. 스승의 날……도 있는가? 오늘에도 스승은 있는가? 스승이 꼭 있어야 하는가?

주변 선생님들을 둘러보아도 훌륭한 스승이 되겠다거나 스승 존중의 풍토를 만들기 위해 스승의 날이 꼭 있어야 한다는 사람을 본 적 없다. 나 또한 스승이 되겠다거나 스승의 날이 꼭 필요한 날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스승은 제자가 만드는 것이다. 제자가 제자로 서야 비로소 스승이 생겨난다.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저 선생님 제자 하겠습니다 라고 하지 않는다. 일부 예능이나 기술 분야에 있을지 몰라도, 적어도 공교육 영역에서는 스승-제자 관계는 머릿속에나 있는 관념일 뿐.

능력이나 기술이 뛰어나다 해서 스승이라 하지 않는다. 지식이 뛰어나다 해도 스승이 될 수 없다. 스승은 그런 실용적인 것에 더해 가르치는 존재로서 인격적 모범, 감화를 안겨주는 존재여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어느 누가 그런 모범, 감화를 타인에게 감히 요구하고 바랄 수 있단 말인가.

오래 바라보고 함께 하면서, 단순히 능력, 기술, 지식의 담지자가 아니라 배우고 싶은 인격자로서, 저절로 존경의 염으로 고개를 숙이고 싶은 ‘어른’으로 느낄 때, 학생이 학생이기를 멈추고 비로소 제자가 될 때, 그때 가르치는 사람이 스승으로 탄생하는 것이 아닐까.

스승의 날이라고 나오는 뉴스는 차라리 보고 듣지나 말 걸 괜히 보고 들었다 싶은 것이 대부분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그 대표작이라고나 할까.

이 결과에 따르면, 교사 열에 여덟은 다시 태어나면 교사가 되지 않겠다고 한다. 현재 교직생활에 만족하고 행복하다는 교사는 넷에 하나꼴도 되지 않는다. 최근 1~2년간 교사 사기는 어떻게 되었냐는 질문에 87.5%가 떨어졌다고 하고, 교권은 잘 보호되느냐는 질문에는 70% 가까이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교총의 이 조사가 100% 정확하다거나 100% 교사 마음을 대변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기는 하나, 해마다 되풀이되는 조사를 보면 지속적으로 교직에 대한 신념, 교직에 대한 만족도, 직업적 권위의 하락이 있어 왔으며, 이번 조사는 그러한 하락의 현재적 끝점을 보여준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스승은 아닐지라도 교사는, 일반적으로 말해서, 학생에게 가장 중요한 환경이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타자다. 그렇기에 교사의 신념과 만족도, 권위를 비롯한 사기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더 나은 교육, 더 성공적 교육을 논하면서 교사는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누구나 그렇지 않겠는가.

앞선 교총 설문에서 교사들이 교직생활에서 가장 어려워하는 것으로 문제행동, 부적응행동에 대한 생활지도, 학부모 민원 및 관계유지, 과중한 행정업무와 잡무를 들었다. 여기에 답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교육청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얼마만큼 투자할 수 있을까, 지금 당장 할 일은 무엇이고 체계적으로 할 일은 무엇인가, 묻고 또 물어야 할 때다. 교육청의 책임이 무겁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