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공세리성당
아산 공세리성당

 

[동양일보 서경석 기자]아산 공세리 성당(주임 홍광철 신부)이 지난 8일 카톨릭 문화유산인 성체거동식을 거행하며 주목을 받았다.

성체거동은 성체를 모시고 성체에 대한 신심을 고취 시키기 위해 성체를 모시고 하는 행렬로 초대 교회 때부터 해온 카톨릭 전통문화 중 하나이다.

전 세계 곳곳에서 성체거동이 이뤄지고 있지만, 특히 공세리 성당과 합덕성당은 한국전쟁 당시에소 성체거동의 전통을 놓치지 않고 이어왔다는 데서 존경을 받고 있다.

공세리 성당은 130여년된 전통의 천주교 성지로 연간 수십여만명의 신자와 관광객이 찾는 순례지이다.

1895년 6월 양촌성당(옛 합덕성당의 전신)에서 분리 창설된 공세리 성당은, 조선시대 충청도 서남부의 조세를 보관하던 공세창(貢稅倉)이 있었던 데서 유래하고 있다.

충청도 내포 지역에 위치한 공세리 일대는 한국 천주교회 창설기에 이미 ‘내포의 사도’라고 불리던 이존창에 의해 복음이 전래됐다.

이 후 박해기를 거치면서도 신앙을 보존하던 이 지역은 신앙의 자유를 얻은 뒤에는 양촌본당의 관할 아래 있다가 1895년 6월 드비즈(Devise) 신부가 공세리로 부임하면서 본당이 설립됐다.

초대 주임에 부임한 드비즈 신부는 이미 매입한 10칸 정도의 기와집을 개조해 성당으로 꾸몄고, 1897년 6월에는 다시 3대 주임으로 부임해 공세창이 있던 일대를 매입한 1899년 그 자리에 성당과 사제관을 건립했다.

1905년에는 조성학당을 세워 교육 사업에도 앞장서 공세리 발전에 기여했지만 1927년 페쇄됐다.

1920년대 들어 신자수가 증가하자 기존의 성당으로는 늘어나는 신자들을 다 수용할 수 없게 되자, 드비즈 신부는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중국인 기술자들을 지휘 감독해 1922년 9월에 현재의 고딕 양식의 서양식 성당과 사제관을 완공했다.

 

이 후 9대 주임 이인하 신부가 1958년 초에 강당을 신축했고, 1971년 1월 13대 주임 김동욱 신부가 성당을 증축하고 별관을 완공 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번 성체거동 행사에는 공세리 성당이 조선시대 곶창지에 세워졌음을 상징하는 조운선 모양의 야외 제대가 설치됐다.

미사 후에는 성체 가마가 공세ㅔ리 성당과 성벽길, 마을길을 따라 이동하자 그 뒤를 200여명의 풍물패와 50기의 깃대, 600여명의 신자들이 따르면서 공세리 성당이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줬다.

공세리 성지성당은 32명의 천주교 순교자들을 모신 순교성지이자, 공세곶은 천주교 박해시대 천주교 신앙의 요충지였다.

홍광철 신부
홍광철 신부

 

1970년대 아산만과 삽교호 방조제가 들어서면서 공세리 성당 까지 들어왔던 바닷물은 끊겼지만, 우리나라 천주교와 내포의 신앙 역사를 배우고 볼 수 있는 성지로 우뚝 서있다. 아산 서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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