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무성 수필가

함무성 수필가

[동양일보]새벽에 전화벨이 울렸다. 그녀가, 제 남편이 숨을 안 쉰다고 허둥댄다. 이게 무슨 일인가. 퍼뜩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얼른 119에 연락부터 하라고 했다. 그녀는 식당일로, 그녀의 남편은 직장에서 퇴근 후 ‘대리운전기사’까지 하면서 열심히 살던 부부였다. 험한 일만 아니기를 바라며 부랴부랴 그녀의 아파트에 도착해보니 마당에는 이미 병원차와 경찰차가 와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겉으로 보기에 썩 건강한 편은 아니었다. 이런저런 약도 먹고 있었지만, 어제 저녁만 하더라도 거실에서 함께 맥주도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한 후 남편은 서재로 들어갔다고 한다.

아파트 통로가 어수선하다. 의사도 와있고, 경찰관은 서재 주변을 살피며 평소에 먹던 약봉지 등을 사진 찍었다. 의사는 이미 늦었다고 했다. 놀란 가족들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마주 잡고 울지도 못한 채 들것에 실려 나가는 가장의 뒤를 따라 병원으로 갔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우리들의 어머니, 또 그 어머니의 어머니, 어머니를 거슬러 올라가며 근원을 알아내기에는 우주의 광막함과 영겁이 너무 크다. 우리는 수십억 광년에 이르는 곳에서부터 와서, 수만 억 개의 별 중 하나인 지구에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을까.

어머니는 먼 우주에서 왔을 법한 한 점의 별을 건져 올려 이 땅에 나를 떨구고, 수백 개의 문턱 넘기를 시범을 가르쳐주었다. 가난의 문턱, 억울함의 문턱, 외로움의 문턱도 다 넘었다.

맏딸인 내가 어른이 되어 아기를 가졌을 때였다. 부엌에서 나는 밥 끓는 냄새, 김치 냄새, 무엇보다 괴로운 펌푸가의 물 때 냄새로 수도 없이 헛구역질을 해대며 어머니께 물었다. 아기도 고구마처럼 땅에서 캐거나, 사과처럼 나무에서 딸 수 없느냐고. 배가 이렇게 큰데 왜 꼭 아홉 달을 채워야 하느냐고. 그럴 때면 어머니는 ‘모든 어머니는 다 겪는 일이니 기다려라.’라고 하셨다.

아기를 잉태하고 낳고 기르며 비로소 나도 그렇게 태어났고 자라,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생명을 뿌려 놓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인류의 고리는 그렇게 이어져왔다.

나는 죽음이 두렵다. 어디로 가는지 몰라서 두렵고, 고통스러울 것 같아서 두렵고, 무엇보다도 모든 것과 단절해야한다는 것이 두렵다. 그러나 생명은 유한하다. 식물도 신록으로 태어나 한 생을 살고, 낙엽이 되어 대지에 스며든다. 마지막 문턱 넘기를 두려워 말자. 우리는 이미 크고 작은 문턱을 넘어보지 않았는가.

내가 어둠에서 나왔을 때는 울었지만, 세상이 나를 웃음으로 반겼다. 우리가 울면서 마지막 문턱을 넘어가는 이를 보내지만, 아마도 그 너머에서는 수많은 영혼이 환한 웃음으로 그를 맞이할 것이다.

장례식장으로 갔다. 그곳은 숙연했고 그녀는 넋이 나간 채 흐르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붙잡으려는 듯 시계 앞에서 서성거렸다. 운구차가 문 앞에 도착했다. 큰딸은 제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들고, 작은딸이 혼백을 가슴에 안고 차에 오른다. 슬퍼하는 산자들을 뒤로하고 죽은 자는 서서히 병원을 빠져나갔다.

요셉 묘지공원 입구에는 '호디에 미히, 크라스 티비'라고 적혀있다. ‘오늘은 나, 내일은 너’라는 뜻이다. 오늘은 내가 관에 넣어져 들어왔지만, 내일은 네가 될 것이니 타인의 죽음을 보며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라는 뜻이다.

삼우제를 지내고 온 그녀의 텅 빈 아파트에는 무너져 내린 하늘이 채우고 있을 것이다. 어김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계절의 변화에 따르는 나무들처럼, 서서히 다가오는 마지막 문턱 넘기를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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