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 동양일보 주필

유영선 동양일보 주필

[동양일보]“2월 하순 어떤 날 아침 김영일의 셋방, 무대 좌측으로 통행문이 있고 중앙면으로 두 쪽인 들창 장자(떨어진 구멍을 인쇄물인 종이로 바른 것)가 있고 창 반면에는 아침 볕이 비쳐 있다. 그 창을 열면 멀리 보이는 소구삼림(小丘森林)의 활엽 상록수가 아침 볕을 받아 은은히 빛남이 보이게 되었다. 그 창 앞 중앙면으로 헌 책상 3개가 놓였으며 그 위에 책과 필통 등이 약간 놓여 있고 그 옆으로 값싼 북케이스가 있고 드러난 붕내(棚內)에는 헌책과 몇 가지 새 책이 많지않게 옆으로 세워 있다.”

이 글은 포석 조명희의 희곡 ‘김영일의 사(死)’ 1막1장의 시작글이다. 100여년 전에 쓴 글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어색함이 없이 문장이 유려하다. 포석이 ‘김영일의 사’를 쓴 것은 1921년, 2년 뒤 이 글을 ‘동양서원’에서 책으로 펴냈으니 꼭 100년 전에 우리나라 최초 창작희곡집이 간행된 것이다.

포석이 ‘김영일의 사’를 쓰게 된 것은 포석이 창립한 ‘극예술협회’가 ‘동우회’를 위해 전국순회연극 공연을 하기 위해서였다. 포석은 그 무대를 위해 글을 썼고 이 글은 최초 사회극이었다.

그렇다면 극예술협회는 무엇이고, 동우회는 무엇인지, 그리고 청주 출신의 팔봉 김기진과 정관 김복진 형제가 만든 토월회는 또 무엇인지, 한국연극 100년의 역사를 맞아 이해를 얻기 위해 짚어보자.

일제강점기 신파극을 앞세운 일본 연극이 대중 사이로 침투하자, 일본으로 유학한 학생들은 일제에 대한 저항과 민족계몽을 위해 연극운동을 시작한다. 그들이 연극에 주목한 이유는 연극은 설명이 필요없이 대중들에게 쉽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3.1운동 당시 투옥이 됐던 조명희는 풀려나자 일본 도쿄로 유학을 떠난다. 그리고 이듬해인 1920년 봄, 조명희, 김우진, 김영팔 등과 연극연구단체 ‘극예술협회’를 조직한다. 이 단체는 최초의 연극운동단체로 기록된다. 이들은 도쿄의 한국 고학생과 노동자들의 모임인 ‘동우회’가 회관 건립기금을 모으기 위해 순회연극단 조직을 부탁하자, 실제 무대에서 연극운동을 실천하고 고학생을 돕자는 목적으로 ‘동우회순회연극단’을 조직한다. 그리고 1921년 여름방학을 맞아, 7월9일부터 8월18일까지 약 한달 여에 걸쳐 부산·김해·마산·경주·대구·목포·서울·평양·진남포·원산 등 18개 지역을 돌며 공연을 하고, 서울 종로 YMCA회관에서 해산식을 갖는다. 이 공연에서 일제 식민지 치하의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고통과 저항을 그린 ‘김영일의 사’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연극의 연출과 순회공연 경비는 김우진이 맡았다. 그리고 조명희와 김기진은 배우로 직접 무대에 섰다. 비슷한 시기 국내의 고학생 모임인 ‘갈돕회’도 공연을 선보였고, 일본 ‘갈돕회’는 22년 국내 공연을 했다.

그리고 1923년, 김기진 김복진 형제와 박승희 등이 도쿄에서 ‘토월회’를 만들고, 그해 7월 조선극장에서 단막극 4편을 선보인다. 1회 공연은 실패했으나 9월에 연 2회 공연은 성황이었다. 그러나 김기진 김복진은 2회 공연 후 ‘토월회’를 탈퇴하고 그 해에 박영희 조명희와 함께 KAFP를 창립한다. 1927년에는 새로운 연극의 꿈을 펼치기 위해 조명희와 김기진 박영희가 ‘불개미극단’을 조직하지만, 조명희는 극단 활동대신 소설 ‘낙동강’을 쓴 후 1928년 러시아로 망명해 항일 디아스포라 문학을 꽃피운다.

이후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연극운동은 더욱 활발해졌다. 수많은 연극 단체들이 국내외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30년대 중반, KAFP를 비롯한 문인들에 대한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면서 연극단체들 역시 검거와 구속으로 해산과정을 거쳐 수면아래로 숨게 된다.

1세기 전, 유학생들의 연극운동은 이렇게 시작됐고 이것이 바로 한국연극의 역사이다.

일제강점하에서 시작한 한국연극은 태생이 민족·민중극일 수 밖에 없었다. 극을 통해 민족계몽과 일제에 대한 저항의 감정을 심어주고자 노력한 이들은 불과 20대였던 피끓는 청년, 학생들이었다. 그것도 이 지역 출신인 조명희, 김기진, 김복진 등이 중심이 되어 주도를 했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올해는 우리나라 최초의 희곡집 <김영일의 사>가 간행된 지 100년이 되는 해가 아닌가. 바로 충북도립극단이 필요한 이유이자 역사적 근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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