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화 2023 충북여성백일장 당선자

[동양일보]일요일 오후, 남편과 함께 옥천 용암사에 갔다. 경관이 좋다고 해서 들러보았다. 소문만큼이나 구석구석 볼거리가 많고 아늑함과 평온함을 주는 사찰이었다. 그렇게 절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한쪽으로 전망대 표시가 보였다. 남편은 전망대에 가면 경관이 더 좋을 것 같다며 올라가자고 말했다. 나는 겁도 많고 발목도 약해서 선뜻 대답을 못했다. 그러자 남편은 내가 손을 붙잡아 줄 테니 염려 말고 가자고 했다. 그래서 나는 못 이기는 척 오르기 시작했다. 길도 미끄럽고 다리도 후들거렸다. 내심 내려오는 것이 걱정되었다. 처음에는 계단을 올랐다. ‘계단이 다하면 전망대가 나오겠지?’ 짐작하며 올랐다. 그런데 웬걸 낙엽이 수북이 쌓인 비탈진 언덕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만 포기하고 내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제 다 왔다며 조금만 더 오르자고 했다. 반신반의하며 계속 올랐다. 그렇게 걸어서 드디어 전망대에 도착했다. 전망을 둘러보고 나서 남편은 좀 더 높은 데까지 가보길 원했다. 나는 다리가 아파서 그만 내려가겠다고 했다. 남편만 더 위로 올라갔다. 몹시 겁이 났다. ‘과연 내가 남편 도움 없이 혼자 내려갈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밑을 내려 보면 까마득했지만 작은 것의 힘을 믿었다. 한 발 한 발 아주 작은 보폭으로 바로 앞 땅만 보며, 바로 앞 계단만 보며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그렇게 조금씩 걷다 보니 어느새 출발 지점까지 내려와 있는 것이 아닌가! 작은 보폭의 힘. 나는 놀랐다. 작은 한 걸음들이 모여 그 높은 곳에서 낮은 곳까지 내려올 수 있었던 사실에 말이다.

나에게 있어 요리도 그렇다. 나는 맞벌이 부부였다. 나는 요리와 살림을 배워 볼 겨를도 없이 결혼을 했다. 청소와 빨래는 그런대로 되는데 요리는 정말이지 너무 어려웠다. 그런 나를 보며 한 친구가 말했다. 아주 작은 음식이라도 요리를 한 후에는 레시피를 하나씩 정리해 보라고 말이다. 그 말을 들은 후부터 작은 요리 하나라도 레시피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무기력증이 있는 나는 컨디션이 다운될 때마다 요리가 두려워지고 이제껏 쌓은 공든 탑이 무너져 내려 요리를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결국은 요리를 아예 포기하는 지경에 까지 왔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껏 정리한 레시피 노트를 보게 되었다. ‘이 모든 게 정말 내가 했던 요리들인가?’ 노트를 보게 되었는데 거의 한 권 분량이 되었던 것이다. 한두 개씩 정리해 둔 것이 어느새 노트 한 권 분량이 되었던 것이다. ‘아, 나는 요리를 안 하고 못 하는 것이 아니었구나! 매일 도전하고 노력하는 시간의 연속이었구나!’를 느끼면서 공책 보고 놀라고, 자신감을 갖고 하는 요리 실력에 또 놀라고...

이렇듯 작은 것의 힘은 강하다.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10,000시간의 법칙이 필요하다고 한다. 10,000시간. 그러나 그 엄청난 시간도 바로, 아주 작은 1분 1초가 모여 이루어진 시간이다. 그리고 콩나물이 자라는 것을 보자. 기를 때 구멍 난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면 물이 매일 빠져나가지만 콩나물이 계속 자라는 것처럼, 작은 것들이 모여 큰 것을 이룬다는 걸 다시 한번 더 가슴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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